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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재산 평가할 기구조차 없는 대한민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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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위기의 주된 원인을 규명해 보면 부동산 담보만 선호한 금융관행의 결과라고 지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국가경쟁력을 획기적으로 제고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방안 중 하나가 바로 지식재산의 가치평가 기구를 조속히 창설하는 일이다.

정부에서 벤처기업을 육성한다고 정책을 내놓고 많은 산업자금을 비축해 두어도 벤처기업에 대한 금융제도를 개혁하지 않는 한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 벤처기업에 대한 대출 과정에서 부동산 담보가 없으면 대출이 이루어지지 않아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과거 우리는 수없이 봐왔다.

지식재산의 가치평가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까지 그 어느 나라에도 지식재산의 가치를 평가하는 권위 있는 공식 기구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외국에서는 벤처기업에 투자하거나 대출하기 위해 금융기관 자체의 전문팀에서 나름대로 지식재산 가치를 평가하고 있을 뿐이다. 2005년도 미국 상위 500개 기업의 자산구조를 보면 부동산·동산 등 유체(有體)재산은 20%에 불과하고, 80%가 특허권·저작권·상표권 등 무체(無體)재산, 즉 지식재산이라고 한다.

특허권·저작권·산업디자인·소프트웨어·캐릭터·만화·식물 신품종·영화 시나리오·반도체칩 설계 노하우 등 다양한 지식재산의 가치평가를 정부의 공식기구에서 할 수는 없을까. 정부가 국제경쟁력을 가진 지식산업을 육성할 의지가 있다면 지식재산에 대한 가치평가 기구와 지식재산의 매매·알선 시장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

수출업무에선 신용장을 담보로 은행에서 수출대금을 받고, 문제가 생기면 수출보험공사에서 그 리스크를 관리한다. 마찬가지로 지식재산의 가치평가 기구에서 작성한 평가서가 신용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이를 근거로 금융기관에서 대출해 주며 지식재산보험공사 같은 기관에서 그 리스크를 관리하면 어떨까. 지식재산보험공사는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투자해 설립하되 장차 ‘페이턴트 트롤(Patent Troll, 일명 특허 괴물)’에 대항하는 기구로 육성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식재산을 매매·알선하는 시장을 열어 거래를 활성화함으로써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진작할 수 있다.

21세기를 무한경쟁시대라고 한다. 인간의 두뇌를 통한 창작활동이 끝없이 펼쳐지는 시대라는 뜻이다. 이런 시대조류를 감안해 미국은 친지식재산법(Pro-IP Act) 제정, 일본은 지적재산기본법 제정, 중국은 과교흥국(科敎興國)정책 채택, 유럽연합은 지식재산공동체 운영 등을 통해 이 분야의 법률제정과 정책수립에서 우리보다 훨씬 앞서 나가고 있다. 이 같은 국제적인 경향과 국가 생존전략 차원에서 우리나라도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을 구축하기 위해 지식재산기본법 제정이 시급하다.

김명신 (사)지식재산포럼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