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효과 확산시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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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현재 우리는 역사상 처음 경험하는 민족 대축제를 즐기고 있다. 이 엄청난 축제는 우리 축구대표팀 젊은이들의 피땀나는 노력과 불굴의 정신력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러나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는 말처럼 거스 히딩크 감독의 뛰어난 리더십이 있었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인재를 아끼고 키워주며 영웅을 만들어 주는데 인색한 우리 사회마저 히딩크 감독만은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하고 있는 것이다. 히딩크 동상도 서고, 히딩크 거리도 생기게 된다는 소리가 들린다. 필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새 영웅 탄생의 길이 열린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을 '거스 히딩크 경기장'으로 명명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냄비처럼 금방 달았다 식어버리는 일과성 칭송보다 그를 통해 우리 사회가 새롭게 깨치게 된 '히딩크 이펙트(히딩크 효과)'를 음미하며 이를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최대한 활용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세계화에 걸맞은 리더십

히딩크 효과란 한마디로 세계화 시대에 적합한 리더십의 확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쟁력 제고 효과다. 우리 축구는 특출한 지도자적 자질과 안목을 가진 히딩크 감독을 유치해 우리사회 곳곳에 만연돼 있는 지연·학연·연공서열 등에 얽매이지 않고 선수를 기용하고 세계적 수준(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팀을 경영한 결과 경쟁력이 크게 제고된 것 아닌가.

오늘날의 무한경쟁시대에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경영으로 살아남을 수 없는 경제분야에서는 기업들이 이미 이러한 히딩크 효과를 널리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국민들은 외국기업이나 외국 전문가가 국내에서 활동하는 것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세계 일류 기술과 자본, 그리고 판매망과 경영기법을 구비한 세계적인 기업과 유능한 인재들을 되도록 많이 유치함으로써 국가경쟁력 기반을 다질 수 있다는 세계화시대에 걸맞은 전략적 사고를 우리 국민 모두가 가져야 한다.

미국의 어느 유명 학자는 일찍이 일본 특유의 문화·언어·관습 때문에 일본 기업들이 외국 전문가나 최고경영층을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 없어 21세기에 유럽과 미국 등과의 경쟁에서 일본이 뒤떨어지게 될 것으로 내다본 바 있다. 과연 우리는 일본과 얼마나 다르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붉은 악마들과 모든 국민이 함께 외치는 "대한민국"이 내부지향적 민족주의보다 세계 속의 한국과 세계인과 더불어 사는 한국인의 긍지에서 나온 것이어야 한다.

유럽의 어느 나라는 나폴레옹이 온 유럽을 석권하고 있을 때 국가 안보와 국내 정치문제 해결을 위해 나폴레옹 휘하의 한 장군을 자국의 왕으로 추대한 사례마저 있다. 아직도 세계화 시대는 고사하고 '구석기 시대'적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국내 정치판을 보며 이러한 사례를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일일까. 우선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은 새로운 국내정치인들이라도 창출될 수 있도록 기존의 주요 선거와 정치자금 관련법과 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부터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중요한 일환으로 대통령 후보들로 하여금 정치부문 개혁에 관한 분명한 공약을 내도록 범국민적인 압력이 가해져야 한다.

정치 개혁,제도 개선해야

월드컵 2002의 성공적 개최로 한국과 한국인의 무한한 발전 잠재력에 대한 세계인의 긍정적인 시선이 모아져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충만한 역동적 에너지가 건설적인 방향으로 결집되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집단 이기주의와 지역간·계층간·노사간 갈등으로 분산·상쇄될 때 값지게 얻은 우리의 긍정적인 이미지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어느 축제든 마냥 계속되지 않는다. 이번의 우리 민족대축제도 곧 그 막을 내리게 돼 있다. 이제 우리는 월드컵 개최를 통해 온 국민이 보여준 성숙한 시민의식과 협동정신을 일상화하도록 노력함과 동시에 국가발전을 위해 히딩크 효과를 우리사회 모든 분야에 최대한 확산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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