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人事制 쇄신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6·13 지방선거가 끝났다.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각 정당과 언론들은 한나라당의 압승, 민주당의 참패, 그리고 자민련의 위기를 평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번 지방선거가 애초부터 대부분의 지역에서 철저하게 대선의 전초전 내지 정당의 대리전으로 전개된 결과에 따른 당연한 해석이겠지만 지방선거 본래의 의미와 기능을 놓고 볼 때 이런 결과는 한마디로 중앙정치의 압승이자 지방자치의 참패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한 진단이다.

중앙정치에 예속될 조짐

지방선거의 쟁점이 왜곡돼 지역문제 중심이 아닌 중앙정치의 쟁점을 지방선거에까지 접목시킨 결과는 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과 무관심만 초래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앞으로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철저하게 예속될 가능성을 한층 높여 놓았다는 사실이다. 또 대부분의 지역에서 같은 당이 광역과 기초단체장, 심지어 광역의원 의석비율의 3분의2 이상을 독차지한 것은 견제와 균형을 기본원리로 한 지방자치에도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아무튼 월드컵 경기가 끝나는 대로 우리는 이번 선거의 결과를 냉정하게 재분석·평가해 지방선거가 본연의 의의와 기능을 회복하도록 하고 나아가 지방자치가 정당의 당리당략에 종속되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특단의 제도개선이 필요하게 됐다.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은 바로 지방자치단체의 인사관리 문제다. 이는 항후 지방자치의 활성화에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됐다.

현행 자치단체의 인사제도에서 단체장의 인사권 남용, 인사위원회의 독립성 결여, 자치단체간의 인사교류의 경직성 등이 문제점들로 지적된 바 있다. 이러한 인사제도의 부정적 측면은 중앙정치인과 공무원들로 하여금 기초단체장의 임명제 전환, 부단체장의 국가직화 등 지방자치를 후퇴시키는 일련의 기도에 빌미를 제공하는 주 요인이기도 하다.

특혜 또는 좌천인사 등 단체장들에 의한 불합리한 인사권 행사가 그동안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기승을 부려왔는데, 각 정당들이 과도하게 개입한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도 예외가 아닌 듯 하다. 경기도를 비롯한 상당수 자치단체가 선거과정에서 줄을 섰거나 음성적 지원을 한 공무원에 대해 정실인사나 발탁인사를 단행하고 전 자치단체장 측근에 대한 보복인사설까지 나돌아 선거에 따른 후유증이 심각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단체장의 정실임용은 반드시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무원들의 능력이 같다면 단체장이 자신의 뜻과 일치하는 인력을 천거 내지 활용할 때 정책을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다. 그러나 정실인사는 적절한 통제가 전제되지 않을 경우 매관·매직은 물론 조직의 기강과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등 폐해가 심각하다. 그러므로 자치시대에 부합하고 보다 객관적이고 투명한 지방인사제도를 정착시켜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먼저 인사제도의 쇄신을 위해 주민으로부터의 통제가 강화돼야 한다. 무엇보다 공무원의 인사내용이 공개돼 주민에게 알려져야 한다. 공개되는 정보도 주민의 판단을 돕도록 질적으로 충실한 것이어야 한다.

원칙과 실력중심 발탁을

둘째, 단체장의 인사를 견제할 수 있도록 인사위원회의 지위와 역할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 인사위원회의 구성 중 민간위원의 구성비율을 높이고 위원의 임기를 단체장 보다 길게 하거나 최소한 같게 해야 할 것이다. 셋째, 인사청문회 등 지방의회가 자치단체의 인사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단체장 교체시 일정기간 동안은 인사를 동결하는 제도적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공정하지 못한 인사, 자기의 측근만을 중용하는 인사가 결국 인사권자 자신은 물론 조직을 망치고 나아가 국가를 병들게 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절실히 인식하는 일이다. 라이벌이나 심지어 원수까지 사심없이 발탁하고 천거하는 제갈공명의 인간경영 전략이나 오로지 실력중심의 선수기용 원칙으로 이번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축구가 보여준 비약적인 결과를 지방자치단체 인사관리의 귀감으로 삼아야 할 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