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① 창덕궁과 수원화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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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조화를 이룬 조선 최고의 궁궐, 창덕궁

여러분은 창덕궁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나요? 창덕궁은 조선 왕조의 공식 궁궐인 경복궁과 비교하면 알기 쉬워요.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모습을 드러낸 궁궐이거든요. 평탄한 곳에 질서 정연하게 건물이 들어선 경복궁과 달리 창덕궁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궁궐로 유명합니다. 다른궁궐들이 왕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지어졌다면 창덕궁은 자연 지형에 맞게 배치돼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지요.

창덕궁은 ‘이궁’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졌어요. ‘이궁’이란 나라에 전쟁이나 큰 재난이 일어나 공식 궁궐을 사용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지은 궁궐을 말해요. 창덕궁의 정문은 ‘돈화문’이라고 불러요. 돈화문과 인정문을 지나면 창덕궁을 상징하는 건물인 인정전이 웅장하게 서 있어요. 또 왕과 신하들이 나랏일을 논의하던 선정전과 희정당 등을 볼 수 있어요. 희정당은 양탄자와 유리 창문, 서양식 의자등 조선 말기 서양 문물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해요.

1910년 우리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한일병합’이 결정된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 바로 창덕궁의 대조전이에요. 대조전은 왕과 왕비의 침실이랍니다. 그밖에도 헌종이 지은 소박한 건물 낙선재와 왕세자가 머물던 성정각 등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볼 수 있어요.

창덕궁 북쪽 구역에는 왕실의 정원인 후원이 있어요. 숲과 나무, 연못, 정자, 화단 등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 후원은 창덕궁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에요. 4곳의 골짜기를 중심으로 자연 지형과 경관을 잘 활용한 부용지·애련지등을 보면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고 낭만적인 멋을 즐겼는지 잘 알 수 있답니다.

실학과 효의 정신이 담긴 계획도시, 수원 화성

수원 화성은 조선왕조의 슬픈 역사가 숨어있는 곳이에요. 당파 싸움에 희생돼 세상을 떠난 아버지 사도 세자에 대한 정조의 효성에서 만들어진 도시거든요. 정조는 사도 세자의 묘를 명당으로 꼽히는 수원의 화산으로 옮기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화산에 살던 백성들이 옮겨갈 도시를 지어야 했고, 신도시 화성이 건설된 것이지요. 수원 화성은 정조의 철학이 녹아 있는 도시였어요. 화성 건설을 통해 백성들을 잘 살게 하려는 것은 물론, 개혁 정치를 실시하고 실학자들을 비롯한 인재를 고루 등용하려 했지요. 정조는 당시 최고의 실학자인 정약용에게 도시 설계를 맡겼어요. 화성은 우리 전통 성곽과 서양의 도시 개념을 접목한 새로운 개념의 계획도시로 지어졌답니다. 그러면서도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했답니다. 거중기·유형거·녹로 등 새로운 장비와 기술을 이용햐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 효과를 거뒀어요.

수원 화성에는 모두 48개의 군사 시설물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41개만 남아 있어요. 장안문과 팔달문, 창룡문과 화서문의 4개 문은 아름다운 것은 물론, 치밀하게 설계된 군사 시설물이에요. 높은 곳에서 적을 감시하는 곳인 공심돈은 독특한 건축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수원 화성은 건축 설계부터 동원된 인력과 장비, 임금과 공사 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화성성역의궤》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어요. 이러한 철저한 기록 덕분에 훗날 전쟁 등으로 파괴된 수원 화성을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었답니다.

[사진제공=시공주니어 / 일러스트=장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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