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팀 어제 출국] 김칫국부터 마셨다 낭패본 伊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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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번 월드컵 우승후보 중 하나로 꼽혔던 이탈리아팀이 결승 진출을 예상해 숙소를 치장하고 많은 집기를 구입했으나 16강전에서 한국에 패하는 바람에 서둘러 짐을 싸느라 진땀을 흘렸다.

일본에서 조별 리그를 마치고 지난 14일 입국한 이탈리아팀은 결승 진출을 '떼어놓은 당상'으로 보고 오는 28일까지 충남 천안 국민은행연수원에 장기 투숙할 계획이었다.

이 때문에 58개의 방을 빌린 이탈리아팀은 선수 23명의 방마다베개·이불·침대커버 등 침구류를 새로 구입했고 오디오 시설도 갖췄다. 편안한 수면을 위해 암막커튼도 쳤다.

또 연수원측이 제공하는 수건 대신 한장에 2만8천원짜리 최고급 대형 타월도 3백장 구입했으며 이탈리아 현지 방송을 수신할 수 있도록 위성안테나를 설치했다.

이밖에 선수들이 좋아하는 접시·포크·테이블보·식사용 냅킨 등으로 식당 분위기를 바꿨다. 이처럼 숙소를 꾸미는 데 들어간 물품은 8t트럭 두대 분량. 비용도 1억원에 육박한다.

그러나 18일 16강전에서 탈락하자 모든 용품이 닷새 만에 무용지물이 됐다. 이탈리아팀은 연수원과 천안시측에 구입비의 50% 정도의 헐값으로 물품들을 사도록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모두 본국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한편 연수원측에 따르면 19일 오전 1시쯤 천안으로 돌아온 선수·임원들은 밤새 음악을 듣거나 술을 마시며 울분을 달랬다. 또 한 선수의 방 출입문이 주먹에 맞은 듯 움푹 들어간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연수원 관계자는 이탈리아팀이 귀국 즉시 연수원 사용료(7천만원)를 온라인 입금키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선수단은 20일 낮 로마행 알리탈리아 항공편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감독·선수·가족 등 1백30명에 이르는 선수단은 한국과의 경기 결과에 대한 불만이 가시지 않은 듯 시종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특히 일부 선수들은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골키퍼인 잔루이지 부폰은 방송 카메라가 나타나자 불쾌하다는 제스처를 했으며, 크리스티안 비에리는 한국 축구팬의 사인 요구에 대해 '노'라고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거절했다. 선수단을 담당하던 한 보안담당자는 모방송사 카메라기자를 세게 밀쳐 넘어질 뻔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편 이탈리아 축구팬들은 출국장에 나와 자국 국기를 흔들고 선수들의 이름을 부르며 환송했고, 일부 여성팬들은 선수단의 초라한 뒷모습을 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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