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기자들에 들어본 월드컵 중간 평가]"시설도 경기도 응원도 원더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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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월드컵이 개막한 지 21일이 지났다. 잘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손님들에게 묻는 것이다. 특히 오랜 세월 월드컵을 취재하며 지구촌 곳곳을 누빈 전문기자들의 평가는 이번 월드컵에 대한 냉정한 채점일 것이다. 20일 서울 삼성동의 국제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외신기자들은 "이번 월드컵은 아주 성공적으로 치러지고 있다. 시설·운영면뿐 아니라 경기의 박진감에서도 역대 어느 대회보다 낫다. 무엇보다도 한국 축구의 눈부신 성장과 한국 국민의 축구에 대한 열정이 놀랍다"고 높은 평점을 주었다.

이들의 눈으로 중간 결산한 월드컵은 '성공 개최'라는 목표를 향해 순항하고 있다. 외신기자들은 국제축구연맹(FIFA)의 티켓 발매 및 숙박·수송 대행사인 바이롬사의 무능력이 빚은 관중석 공석 사태, 숙박업소 대량 해약 사태 등에 대해서는 굳이 지적하려 들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은 개최국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보리스 보그다노프(러시아·스포츠 익스프레스 데일리)

경기장 시설이나 대회운영 등에서 나무랄 데가 별로 없다. 무엇보다도 축구 기자로서 이변의 연속인 이번 월드컵을 취재하게 돼 영광이다. 기사거리가 가장 풍부한 대회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16강전에서 이탈리아를 이긴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그 경기를 직접 대전 경기장에서 관전했는데 한국 선수들의 투지와 거스 히딩크 감독의 뛰어난 전술로 일궈낸 승리다. 이탈리아의 판정 시비는 말도 안된다. 한국 관중의 응원이 놀라울 뿐이다.

길거리 응원의 경우 세계 어느 국민도 흉내낼 수가 없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 국민이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메웠는데 서울 시청 앞의 인파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파울루 R 코부스(브라질·풀하 데 상파울루)

솔직히 언어와 풍습이 매우 달라 처음 한국에 올 때는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친절한 한국 국민의 도움 덕분에 잘 지내고 있다.

보통 월드컵이라고 하면 훌리건·경기장 난동을 연상하는데 이번 월드컵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아마 아시아에서 개최하는 대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경기장에 가보면 외국인 관중의 수가 너무 적은 것이 흠이라면 흠일까. 그러나 개최국 한국의 탓만은 아니다. 남미·유럽과의 거리를 생각하면 더 많은 외국인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우리 신문만 하더라도 지난 프랑스 월드컵에는 40여명의 취재진을 보냈는데 이번에는 한국과 일본 양국을 다 합쳐 12명만 보냈다.

경기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이번 월드컵은 그리 훌륭한 대회가 아니다. 모든 팀이 이기기만 바랄 뿐 창조적인 경기를 보여줄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팀의 선전은 인상적이다.

◇페터 린덴(오스트리아·크로넨 차이퉁)

아시아에서 개최되는 첫 대회이고,공동개최도 처음이기 때문에 이전부터 많은 관심을 가졌다. 한국은 오스트리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보기도 처음이다. 그러나 한국 국민이 너무 친절해 장거리 여행의 피로를 잊을 수 있었다. 설사 말이 잘 안통한다 하더라도 끝까지 도와주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경기장 시설이 환상적이다. 이렇게 훌륭한 시설이 나중에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면 너무 안타까울 것이다. 서울을 제외한 지방도시의 숙소는 가격에 비해 시설과 서비스가 안좋았다.

한국의 8강행은 이변 가운데서도 최대 이변이다. 관중의 열광적인 응원에 힘입어 한국은 이탈리아를 꺾는 기적을 낳았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의 선전은 조직력과 체력을 강조한 히딩크 감독이 만들어낸 역작이라고 생각한다. 1년반 전 오스트리아가 히딩크 감독의 영입을 추진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를 놓친 것이 너무 아쉽다. 한국이 오는 30일 요코하마에서 결승전을 치를 경우 일본인이 한국팀을 응원할지 기대된다. 두 국가간의 역사적 긴장을 생각하건대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알란 S 페데센(덴마크·엑스타 플라데스)

이번이 다섯번째 월드컵 취재인데 이처럼 힘들게 취재한 대회는 처음이다. 두 나라가 공동개최하는 데다 각 나라에 경기장이 10개씩이니 여정이 길고 힘들 수밖에 없다. 그처럼 많은 경기장을 만들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겠지만 대회 이후 관리·운영에서 문제가 될 것이다.

다른 외신기자들과 만나면 늘 하는 이야기지만 한국 축구의 눈부신 성장은 경악스럽다. 이건 빈말이 아니라 진심에서 하는 말이다. 대전에서 벌어진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을 봤는데 내가 본 축구 경기 가운데 가장 인상깊었다. 경기도 박진감 넘쳤고 관중의 응원도 대단했다. 이 모든 것이 녹아 어우러진 한 편의 교향곡이었다.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아부 바카르 아탄(말레이시아·시스템 텔레비시엔 말라이시아 베르하드)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월드컵이고 새 천년 첫 월드컵이라 느낌이 다르다. 86년 아시안게임 때도 왔는데 그동안 한국은 눈부시게 달라졌다.

경기장 시설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대회운영이 놀라울 정도로 시스템화해 있다. 한국의 선전은 이제 전 아시아의 자랑이다. 말레이시아 국민도 한국의 이탈리아전 승리를 기뻐했다.

사실 일본이 더 좋은 성적을 낼 것으로 예상했다. 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북한이 8강에 오르더니 이번 월드컵에서는 한국이 8강에 올랐다. 한민족이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다. 70, 80년대 말레이시아와 대등했던 한국 축구가 놀랍게 성장했다.

허진석·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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