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어리진 속병·화병도 축구 등 운동으로 날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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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7면

월드컵 열기로 이비인후과는 웃고 내과는 울고 있다. 목이 터져라 외친 응원으로 목이 쉰 사람들이 이비인후과를 찾는 반면 평소 그처럼 많던 소화불량 등 내과 환자는 격감했다는 것이다.

기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후자다. 내과 환자 격감의 원인은 카타르시스에 있기 때문이다. 정치나 직장일 등 속시원하게 풀리는 것이 없었던 우리 국민에게 태극전사들의 16강 진출은 쌓인 스트레스를 말끔히 씻어내게 했다. 한(恨)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다. 오죽하면 전세계 정신과 의사들이 한으로 생긴 한국인 고유의 화병을 'Hwabyung'으로 표기하며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을까 싶다.

내과 질환의 절반은 사실 의사보다 환자의 역할이 중요한 기능성 장애다. 대표적 기능성 장애가 바로 한국인에게 흔한 속병이다. 내시경 등 검사로 위장을 들여다보아도 특별한 이상이 없는데 환자는 늘 더부룩하고 체한 듯하며 트림이 난다. 구조엔 문제가 없는데 기능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땅이 꺼져라 한숨짓는 화병도 기능성 장애의 일종이다. 이 밖에도 설사와 변비가 교대로 나타나는 과민성 대장증후군,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면증과 요통, 가슴 두근거림과 불안증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질환은 넓게 볼 때 기능성 장애에 속한다. 정확한 조사는 없지만 국가 간 기능성 장애의 비율을 점검해보면 한이 있는 우리가 가장 높지 않을까 추정된다.

평소 속이 나빠 고생하던 사람들도 한국팀을 열렬히 응원할 때엔 씻은 듯이 증상이 사라진 것을 체험했을 터이다. 그러나 월드컵처럼 전국민의 카타르시스를 유도할 수 있는 기회가 매년 찾아올 순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일과성 행사보다 국민 스스로 한을 승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기자는 가장 좋은 것이 운동이라고 믿는다. 물론 좋아하는 운동이라야 한다. 운동은 심폐 기능과 근력 향상 등 육체적인 것보다 자율신경을 안정시키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등 정신적 효과가 더 중요하다.

지금이라도 속병과 화병 등 기능성 장애를 앓고 있는 분이라면 운동에 심취해보길 바란다. 기왕이면 월드컵 열기도 있고 하니 축구를 해보면 어떨까 싶다.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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