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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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르헨티나에 위기를 몰고 온 '탱고효과'에 이어 '룰라(Lula)효과'가 브라질을 위협하고 있다." 5월 말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기사다. 룰라효과? 생소하게 들리는 이 말은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라는 브라질 정치인의 긴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월드컵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삼바축구와는 달리 브라질은 최근 들어 갑작스런 외환위기를 겪고 있다. 브라질의 레알화는 지난주 달러당 2.8레알로 8개월래 최저수준까지 떨어졌다. 2년 전에 비하면 반토막 수준이다. 놀란 브라질 정부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1백억달러를 다시 빌린다고 발표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4년 만이다.

이런 위기가 왜 룰라 때문일까. 외신들은 오는 10월로 예정된 대통령선거에서 단독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다 실바가 급진 좌경성향의 노동자당 후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대선 4수(四修)째인 다 실바는 지난 선거에서 외채상환 거부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며,최근에는 부패방지와 소득재분배를 내세워 소득세 최고세율을 현행 27.5%에서 50%로 두배 가량 올릴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의 노선은 카르도주 정권의 잇따른 부패 스캔들에 실망한 국민들을 파고들었다. 최근 지지도는 40%대로 여당후보를 두배 가량 앞지르고 있다. 가히 '룰라풍(風)'이라 할 만한 상승세다.

문제는 룰라바람에 놀란 외국 자본이 브라질을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미국 증권사들은 5월부터 고객들에게 브라질 투자를 줄일 것을 권고하고 있다. JP모건은 외채가 2천8백억달러에 달하는 브라질의 컨트리 리스크(국가 신인도)를 러시아와 나이지리아 사이로 떨어뜨렸다. 덕분에 브라질 주가와 통화가치가 폭락했고, 급기야 IMF에 구조신호를 보내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룰라 후보는 펄쩍 뛴다. 그는 "외국인들이 브라질 유권자들을 위협하기 위해 '경제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으로는 국내외에 자신의 강경 이미지를 완화시키려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과거 '전투복'이라 불렀던 청바지 대신 검은색 정장을 차려 입고 "외채도 상환조건만 바꿔주면 갚긴 갚는다. 나는 변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과연 그가 브라질 유권자들의 지지와 국제사회의 신뢰를 함께 얻을 수 있을까. 여러모로 우리가 겪은 지난 5년을 연상시키는 룰라효과의 결말이 흥미롭다.

손병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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