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도우미' 나선 고교생 400여명 "어른 무관심 안타까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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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울 송파구 잠실고 2학년 박진평(17)군에게 지방선거 투표일인 13일은 특별한 날이다.

투표권은 없지만 오전부터 송파구 거여2동 제2투표소인 거암교회에서 선거관리위원회 캐릭터인 '공명이'가 새겨진 모자와 어깨띠를 두르고 장애인과 노약자들을 위한 '투표 도우미'로 일하기 때문이다.

4~5년 뒤면 당당하게 투표권을 행사할 예비 유권자들인 고교생 4백여명이 6·13 지방선거 투표 도우미를 자청, 풀뿌리 민주주의 현장을 체험하고 봉사정신도 꽃피운다.

서울 잠실고 2백여명과 오금고 1백50여명은 13일 오전 6시부터 풍납·잠실동 등 송파구 1백15개 투표소 입구에서 도우미로 나선다.

이들은 각 투표소에 2~5명씩 분산 배치돼 장애인과 노약자들을 직접 부축하며 기표를 돕는다. 朴군은 "예비 유권자로서 어른들이 투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 뿌듯하다"면서 "월드컵에 묻혀 소중한 한 표를 포기하려는 어른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번 투표 도우미 역할은 각 학교 봉사담당 교사들이 제안했다. 선관위에 자원봉사자가 모자란다는 소식을 들은 잠실고 봉사담당 유연훈(46)교사 등은 "지방 일꾼을 뽑는 선거에 무심한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부끄러웠다. 직접 투표 현장을 경험해보고 훗날 당당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창덕여고생 80명은 지난 1,2일 이틀간 오후 1시부터 11시까지 송파구 부재자 1만1천4백19명의 투표용지와 서울시장·구청장·비례대표 후보 등 98명의 인쇄물 1백6종을 봉투에 담았다.

선관위 직원의 지도를 받으며 딱딱한 의자에 앉아 부재자의 주소와 이름, 색깔이 다른 5장의 투표용지를 일일이 확인하고 담는 힘든 일이었다.

날카로운 종이에 손을 베기도 했지만 학생들은 중간 중간 "공약과 사람됨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진정한 지역 일꾼을 뽑으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1학년 金진희(16)양은 "내가 작업한 투표용지에 표를 찍는다고 생각하니 밤늦게까지 일해도 피곤하지 않았다"며 "4년 동안 우리 고장 살림을 맡을 사람을 뽑는 날인데 놀러가더라도 먼저 투표하고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현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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