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스카 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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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바르샤바를 떠나는 것이 꼭 죽으러가는 것 같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피아노의 시인' 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구절이다. 러시아의 압제에 맞선 민중봉기였던 1830년 폴란드 혁명의 와중에 조국을 떠난 쇼팽은 예감처럼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이듬해 러시아가 무력으로 혁명을 진압했다는 소식에 격분한 그는 '혁명'이라 불리는 에튀드(연습곡)를 작곡했다. 쇼팽이 파리에서 운명했을 때 친구들은 그가 조국을 떠나면서 담아왔던 흙을 무덤에 뿌려주었다. 쇼팽의 묘비명에는 "그는 파리에 묻혔지만 폴란드의 흙에서 잔다"고 쓰여 있다.

쇼팽의 나라 폴란드는 여러모로 한국과 비슷한 면이 많다. 강대국 독일과 러시아의 중간지대에 위치한 지정학적 특성상 966년 건국 이후 걸핏하면 침략당하거나 지배를 받았다. 독일에 점령당했던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온 나라가 전쟁터로 변하면서 6백만명 이상이 희생당했다. 종전 이후에는 소련의 동구 공산권 지배체제에 편입돼 반세기를 보내야 했다.

끊임없이 홀로서기를 시도해 온 점도 비슷하다. 1980년 레흐 바웬사가 자유노조 인정을 내걸고 벌인 18일간의 그단스크 조선소 파업은 동구권 붕괴의 서곡이었다. 그로부터 9년 후 폴란드는 동구권 최초로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민주화의 길을 걷게 된다. 90년대 이후 체제가 안정되면서 폴란드는 연평균 5% 이상의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89년 수교한 한국은 대(對)폴란드 직접투자액이 16억달러로 아시아국가 가운데 단연 1위다. 양국간 교역규모는 대우의 현지 자동차공장이 돌아가던 97년에 13억달러를 넘었으나 지난해에는 3억8천만달러선에 그쳤다.

우리처럼 단일민족국가에 고유 언어를 지켜온 폴란드는 유럽 어느 나라 못지 않은 문화·종교적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폴란드 출신이며, 쇼팽 외에도 지동설의 코페르니쿠스·물리학자 퀴리부인 등 위인들을 배출했다. 폴란드의 축구 사랑 역시 한국 못지 않다. 대표팀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폴란드 전역에서 "폴스카 골라(Polska Golla·폴란드에 승리를)!"라는 함성이 메아리친다. 이제 결전의 날이 밝았다. 한국과 폴란드 양국의 선전을 기원한다. "대~한민국!", "폴스카 골라!"

손병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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