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중국'13억 시장 문이 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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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중국의 출판계도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를 것인가. 5월 24일부터 28일까지 열린 제9회 베이징(北京)국제도서박람회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열린 첫 대규모 국제 박람회다.

올해 중국도서전은 유럽과 미국 등 해외 출판사의 관심과 참여도에서 일본의 도쿄(東京)국제도서박람회를 앞서며 아시아권의 선두 주자로 우뚝 나섰다. 13억 인구의 거대한 시장 앞에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세계 출판계의 관심이 반영된 것이다. 자국 내 열기도 뜨거웠다. 중국의 출판 관계자들은 이르면 10년 안에 세계 최대 도서박람회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떠오르는 강대국으로서의 자부심이다. 전시회장의 디자인이나 출품된 중국 책들의 인쇄 수준 모두 수준급이었고, 격년으로 치르던 박람회도 올해부터 매년 열기로 했다.

한국 출판계는 거대한 잔칫상에 숟가락을 제대로 올려 놓고 있는가. 중국 출판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진단은 한국 출판계가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과 직결된다. 문화적 친화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중국으로의 책 수출을 전략적으로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중국에서의 성공은 홍콩·싱카포르·말레이시아 등 화교권을 거쳐 서구로 나아가는 계기도 마련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중국 출판의 현재와 미래=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변화는 출판 분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체 5백60여개의 출판사가 국영기업에서 개인 중심으로 속속 바뀌고 있다. 8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상해사서출판사(上海辭書出版社)의 리웨이궈(偉國)사장은 "지금은 정부의 지원금 없이 판매 수입만으로 2백명 직원의 봉급을 지급하고 있다"면서 "창의력을 발휘해 수익을 올린 편집자에겐 보너스도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많은 중국인의 관심은 돈을 많이 벌고 평균 1명 꼴인 자녀의 교육을 잘 시키는 것이다.

이는 독서 경향에도 반영된다. 서점에 눈에 띄게 진열된 책들은 선진국의 기업관리와 성공담 번역물·어린이 도서·외국어 교재·컴퓨터 관련 책들이다. 베이징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 왕푸징(王府井)에 있는 신화(新華)서점의 한 직원은 지난해 잭 웰치 자서전과 해리포터 시리즈 같은 책이 많이 팔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90년 역사를 가진 대표적 인문서 출판사인 중화서국(中華書局)의 선쭤훙(申作宏)주임은 "실용서의 판매 증가가 중국의 전통문화를 재생산하는 중화서국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해 신입사원 34명 가운데 8명이 박사고 나머지는 모두 석사며, 대부분이 베이징대학 출신인 2백여명의 편집자가 중국 출판의 자존심을 지켜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출판사들이 수익성을 올리는 방향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과거처럼 정부 지원금을 받고 문화적으로 중요한 책을 수익과 관련없이 펴내는 일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 새로운 고민으로 대두된다.

◇뜨거운 감자 '불법 출판'=중국에는 가짜 상품이 많다. 책도 예외가 아니다. 이른바 불법 출판이다. 인기를 끈 국내외 서적을 허가없이 복제해 파는 것이다. 42개국에서 1천여 출판사가 참여한 이번 박람회의 주제를 '저작권 무역'으로 택한 것은 중국 출판계의 최대 고민을 드러내는 동시에 자신감을 표출한 것이었다. 문제를 피해가지 않고 WTO 가입을 계기로 국제적 표준에 맞춰가겠다는 것이다.

중화서국의 책도 불법으로 출판되는 일이 있다고 밝힌 선쭤훙 주임은 "WTO 가입은 중국 출판계에서도 매우 큰 충격이었다"면서 "세계인들이 중국을 알게 하고 중국은 세계인들을 알게 하기 위해 법적으로 저작권을 보호하는 방안을 계속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리웨이궈 사장은 "상해사서출판사의 대표적 책으로 중국의 국어사전격인 『사해(辭海)』도 불법출판물이 있었지만 법원에 제소해 해결했다"고 밝혔다.

'불법출판'쉽게 해결 안나

하지만 불법 출판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으리란 전망도 제기된다. 한국문화산업진흥원 베이징대표처의 권기영 대표는 "불법을 방치하면 결국 중국 문화가 훼멸될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해결되겠지만 단속을 강화한다 해도 최소한 5년은 지나야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현실을 인정하는 가운데 그에 맞춘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이징=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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