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부는 '反이민'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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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독일 수도 베를린 시내 한복판 티어가르텐 공원은 모든 베를린 시민들에게 귀중한 휴식공간이다. 그러나 주말만 되면 터키인들이 '점령'해버린다.

넓은 잔디밭을 차지하고 양고기 바비큐를 해대는 바람에 공원이 온통 연기로 뒤덮인다. 가까운 대통령 관저까지 양고기 굽는 냄새가 퍼진다.

시 당국은 대통령 관저 부근을 바비큐 금지구역으로 정했지만 막무가내다.

베를린은 인구 3백50만명 중 30%가 외국인이다. 그 중 터키인이 17만명으로 가장 많다. 대부분 1950년대말 이후 '가스트 아르바이터(타국 노동자)'로 들어온 사람과 그 후예들이다.

독일 전체로 봐도 터키인은 2백5만명으로 외국인 가운데 단연 1위다. 그들은 독일 사회에 동화하지 않고 독자적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독일은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외국인에게 너그럽다. 전체 인구 8천2백10만명 중 10% 가까운 7백30만명이 외국인이다. 프랑스의 2.5배, 영국의 5배다. 그러나 최근 반(反)이민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2000년 외국인 배척 범죄가 전년에 비해 59% 늘었다. 여론조사에서도 독일 국민의 3분의2가 이민을 거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유럽 정계를 뒤흔들고 있는 극우파 약진의 한가지 중요한 요인은 반이민이다. 경기침체로 실업이 늘면서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사회복지 예산을 축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치안 상황이 나쁜 것도 이민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서유럽에는 최대 3백만명의 불법이민자들이 살고 있으며, 매년 50만명이 추가로 흘러 들어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극우파는 불법이민자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추방하라고 요구한다.

지난번 프랑스 대통령선거에서 2위를 차지한 국민전선의 장 마리 르펜과 네덜란드 총선에서 급신장한 핌 리스트는 이민 문제를 집중 공략해 높은 지지를 얻었다. 덴마크 인민당은 지난해 11월 이민 억제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어 18%의 지지를 얻었다.

벨기에 브람스 블록은 불법이민자를 추방하겠다는 공약으로 3위 정당으로 발돋움했다. 오스트리아 자유당·이탈리아 국민연맹도 반이민정책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민을 이처럼 '악의 근원'으로 보는 데 대해 경제 전문가들은 이의를 제기한다. 유럽의 낮은 출산율과 노령화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이민뿐이라는 것이다. 독일은 앞으로 50년 안에 인구가 최대 2천3백만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전체로 볼 때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2015년 전체 인구의 5분의1,2050년 3분의1까지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따른 인력 부족은 심각하다. 독일은 실업자가 4백만명을 넘었지만 정보기술(IT)인력 등 고급인력 1백50만명을 외국으로부터 충원해야 한다.

따라서 이민을 받아들이는 문을 계속 열어 놓되 불필요한 인력의 유입을 막는 '통제된 개방정책'이 가장 효과적인 이민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저명한 언론인 테오 조머는 극우파의 반이민 선동을 '민족주의적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하고 "극우파는 이민 문제에 대해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일반 국민들의 불만을 자극하는 '두려움의 정치'에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민 문제는 비단 경제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하나의 유럽', 문화 다원사회로 나가는 유럽이 외부사회에 대해 어느 정도의 포용성을 갖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베를린=정우량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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