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고 쫓기는 SUV 판매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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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판매에서 1년여 동안 1위를 지켜온 현대자동차 싼타페가 형제 회사인 기아자동차 쏘렌토에 덜미를 잡혔다.

쏘렌토는 지난달 9천1백65대를 팔아 싼타페(5천3백65대)를 제치고 SUV 판매 1위에 올랐다.

2천만원대인 두 차량은 모두 매연을 줄이고 출력을 높인 첨단 디젤(커먼레일)엔진을 달아 기존 디젤차보다 조용하고 떨림이 줄어 승차감이 좋아졌다.

각기 출고 대기차량이 1만여대에 달해 두세달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지만 쏘렌토가 더 잘 팔리는 이유는 뭘까.

쏘렌토는 사양이 같은 싼타페보다 3백만~4백만원 비싼데도 실내 공간이 넓고 힘이 좋은 게 강점으로 꼽힌다.

싼타페가 승용차 스타일을 가미한 SUV라면 쏘렌토는 정통 SUV를 표방한다. 싼타페는 도심 주행에 적합한 편이고 쏘렌토는 비포장 도로나 자갈길 등 험로를 달리는 데 제격이라는 점이 고객층을 나눴다.

싼타페는 사륜구동 모델이 5%에 불과한 데 비해 쏘렌토는 모두 사륜구동으로 한 것도 차별점이다.

주행성능을 따지는 고객들에게는 사륜구동이 매력적이다.

배기량도 쏘렌토(2천5백㏄)가 싼타페보다 5백㏄ 더 크고 출력(1백45마력)도 30마력 더 좋다.

기아차 관계자는 "험로 주행에 걸맞게 차체가 높고 상시 사륜구동이어서 접지력이 우수해 정통 SUV에 가깝다는 점이 인기를 끄는 요인"이라며 "20~30대 회사원과 전문직 종사자들이 주고객층"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내 공간이 넓고 디자인이 수입차와 비슷한 점도 인기에 한몫했다"고 말했다.

싼타페는 여성뿐 아니라 50대까지 고객층이 광범하다.

또 미국에 수출하기 위한 전략차로 만들었기 때문에 근육질의 디자인과 내부 편의장치가 눈에 띈다.

액화석유가스(LPG)·가솔린 차량도 있어 선택의 폭이 넓다. 하지만 디젤 엔진을 사용하기 위해 억지로 7인승으로 만들다 보니 7명이 탈 경우 뒷좌석 승객이 불편한 점이 흠이다.

한편 쌍용 렉스턴은 지난해 9월 출시한 이래 매월 4천대 이상 팔려 3천만원대 고급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시장에서 선두를 지켜왔다. 현대 테라칸은 월 평균 3천대 수준에 그쳤다.

가격은 렉스턴이 주력 모델(RX290)의 경우 3천5백만원대. 사양이 비슷한 테라칸에 비해 3백만원 정도 비싸다. 엔진은 두 차 모두 2천9백㏄ 디젤로 렉스턴이 일반 디젤인 데 비해 테라칸은 힘이 좋은 첨단 디젤(커먼레일)을 달았다.

렉스턴이 가격도 비싸고 엔진도 구형인 데 판매에서 우위인 비결은 디자인에 있다.

쌍용차 관계자는 "둥그스름한 디자인이 테라칸의 각진 스타일보다 한 수 위라는 평을 듣고 있다"며 "3열 좌석을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어 실내공간 활용도에서도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벤츠 디젤 엔진을 사용해 실내가 조용한 점도 고객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또 디젤 엔진을 달아 떨림 현상이 심할까봐 체어맨의 설계기술을 이용해 방음·방진에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차 안이 조용한 점도 매력적이어서 금융인·의사를 비롯한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이 구입하고 출고 대기만 1만대에 달한다.

현대차도 테라칸의 디자인이 상대적으로 뒤진다는 점을 인정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갤로퍼 후속모델로 개발한 테라칸이 각진 디자인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새차라는 인식을 주지 못하고 갤로퍼와 다른 점이 없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몽구 회장의 친정격인 현대정공이 현대차에 흡수된 후 만든 첫작품인데도 판매가 부진하자 현대차는 테라칸을 출시 1년만에 '성형수술'해 이달 중순 새 모델을 내놨다.

현대차 관계자는 "신형 테라칸은 앞뒤 디자인을 좀더 부드럽게 바꿨고 에쿠스에 적용하는 고급 사양을 보강했다"고 말했다.

현대의 꺾인 자존심을 신형 테라칸이 회복시켜줄지 관심이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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