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응씨배 바둑 26일부터 결승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응씨배에서 우승해 한국 바둑의 적통을 잇겠다."(최철한9단)

"과거의 좌절은 다 잊었다. 평정심이 관건이다."(창하오9단)

'독사' 최철한9단이 세계무대 첫 등정에 나선다. 2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개막전을 치르는 제5회 응씨배 세계선수권전(우승상금 40만달러)이 그 무대다. 국내 3관왕 최철한은 이창호9단을 연거푸 넘어서며 올해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과연 19세의 최철한이 중국의 등불로 떠오른 창하오(常昊.29)9단을 제압하고 또한번 비상할 수 있을까.

응씨배는 1989년 조훈현9단이 1회 대회에서 우승했고 그 후 서봉수9단.유창혁9단.이창호9단 등 4인방이 바둑입문 순서에 따라 차례로 우승한 대회다. 그래서 이 대회는 어언 한국 바둑의 적자를 가리는 상징성을 띠게 됐다. 주최자인 대만 재벌 잉창치(應昌期)가 사망한 뒤에도 그의 유언에 따라 잉창치바둑기금이 4년마다 대회를 열고 있다.

최철한9단은 "꿈 같은 한해를 보내고 있다. 컨디션도 좋다.꼭 우승하여 선배들의 업적을 이어가겠다"고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패기와 자신감 넘치는 최철한의 상대는 한국 바둑에 한이 맺힌 창하오9단이다. 과거 중국의 이창호로 불리며 대륙의 기대를 한몸에 모았던 창하오는 조훈현-이창호 두 사제의 벽에 가로막혀 세계무대 결승전에서 다섯번이나 잇따라 좌절했다. 그 상처로 깊은 슬럼프에 빠져들었다.

회생이 어려워 보이던 창하오가 올해 두개의 세계대회 결승에 오른 것은 놀랍다. 중국에서 만난 창하오는 "주요 길목에서 이창호-조훈현 두사람에게 계속 졌다 .꼭 이기려는 마음에 평정심을 잃은 것이 패인이었다"고 솔직히 고백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닥까지 추락한 뒤 절망 속에서 오히려 승부를 관조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젠 어느 정도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창호는 세계 최강자다. 결승전 상대가 이창호가 아닌 것은 나에게 기회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것을 잊기로 했다"고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중국의 랭킹을 보면 창하오는 불과 10위다. 하지만 수양이 깊어진 이번의 창하오는 랭킹 1위를 달리던 3, 4년 전보다 더 강할지 모른다.

창하오는 내년 1월 5일 도쿄에서 이세돌9단과 도요타덴소배 세계대회 결승전을 갖는다. 최철한과 이세돌의 보이지 않는 후계 경쟁도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다. 5번기인 응씨배 결승전은 26일 1국, 27일 2국을 둔 뒤 3국부터는 중국에서 추후 열릴 예정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