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합의했던 ‘구의회 폐지’ 없던 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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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국회 마지막 날인 30일 지방행정체제 개편 특별법안의 처리는 무산됐다.

법안은 이날까지 국회 법제사법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민주당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여야는 그래 놓고 물밑 협의에선 법안의 핵심 내용이던 특별·광역시의 ‘구의회 폐지’ 조항을 슬그머니 삭제한 수정안까지 마련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대 쟁점이던 도(道)를 그대로 존치시킨 데 이어 행정 비효율의 상징인 ‘구의회’마저 존치시키려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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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한나라당의 안상수·민주당 이강래 당시 원내대표는 4월 23일 “지방행정체제 개편안은 4월 합의 처리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되 불발 시 6월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한다”고 합의했다. 이를 바탕으로 같은 달 27일 국회 지방행정체제 개편 특위는 ▶시·군·구 통합과 ▶특별·광역시 구의회의 폐지 ▶읍·면·동 주민자치회 출범을 골자로 한 지방행정체제 개편 특별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6월 2일 지방선거가 끝나자 법사위에선 ‘구의회 폐지’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민주당이 “구청장은 직선으로 뽑으면서 구의회만 없애는 건 민주주의의 후퇴”라면서 민주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법사위에서 법안 상정을 막고 나선 것이다. 한나라당의 김충환·차명진 의원도 구의회 폐지안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그러자 두 당 원내대표와 특위는 법사위에 계류된 법안을 처리한다는 명목으로 법안 13조의 ‘구의회 폐지, 구정위원회 설치’ 조항을 삭제하는 수정안을 마련했다. ‘도’ 문제와 마찬가지로 구의회 개편 방안 마련을 다음 정권 때인 2013년 5월까지로 미룬 것이다. 한나라당 간사인 권경석(창원갑) 의원은 “법안 처리는 시급한데 여야 의원들의 너무 거부반응이 심해 수정안 마련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국회 관계자는 이에 대해 “6개 특별·광역시에서 1010명의 구의원을 새로 뽑고 보니 여야의 생각이 달라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민주당이 선거에 승리해 서울·인천 등 대도시 기초의회를 한나라당과 양분한 상황에서 소속 구의원들의 이해를 고려했다는 것이다. 서울을 기준으로 구의원의 평균 연봉(의정비)은 4000만원이다.

동국대 심익섭(행정학) 교수는 “특별법 무산은 여야가 법안 처리 일정을 6월 지방선거 이후로 넘길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라며 “뉴욕·파리·런던 등 세계 주요 대도시 어디도 구의회를 두는 나라가 없는데 정치권에선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수정안마저 수용하지 않았다. 문학진(하남) 의원은 지난달 2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전국적인 행정체제 개편을 당연시하는 법안 자체를 반대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 우윤근 법사위원장은 “7월 임시국회라도 열어서 처리해야 할 시급한 법안”이라며 양당 원내대표의 조속한 합의를 요청했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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