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한·미 재계회의 미측 위원장 그린버그 AIG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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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법체계의 매우 불행한 측면(the more unfortunate aspects of the U.S. legal system)인 집단소송제를 한국이 도입하려 하고 있다."

한.미 재계회의(Business Council)의 미국 측 위원장을 맡고 있는 모리스 그린버그(79.사진) AIG 회장이 한국 정부가 내년부터 도입할 예정인 증권집단소송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그린버그 회장은 미국의 경영 전문지 'CEO(최고경영자)'12월 호에 실린 기고문에서 한국의 집단소송제와 노동.북핵문제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놨다. 이와 관련,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15일(현지시간) 열린 경제정책토론회에서 "미국 기업들이 소송으로 멍들고 있다. 의회가 나서 기업을 보호할 법을 만들어야 한다"며 '소송 망국론'을 제기한 바 있다.(본지 12월 17일 E1면)

그린버그 회장은 한국의 경영 및 투자 환경이 긍정적으로 변한 것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했다. 그러면서 노사 관계를 선진화하고 법치주의를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장점이 많지만 글로벌 추세 속에서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들과 씨름해야 한다"면서 가장 큰 장애물로 노사문제를 꼽았다.

그린버그 회장은 한국 정부가 지난 여름 노동계의 집단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강경 대응한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한국의 노동 불안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도로 정치조직화된 한국의 강성 노조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규정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노동법상 '정당한 사유'라고 돼 있는 해고 요건을 법적으로 보다 분명하게 정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가 아.태 지역에 본부를 둔 500대 기업의 임원 1200명을 대상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대해 조사한 결과도 소개했다. 한국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대한 설문 결과 "매우 낮다"(65%)와 "낮다"(27%)를 합쳐 부정적인 응답이 92%였고 긍정적 대답은 8%에 그쳤다. 그린버그 회장은 "북한 핵문제도 투자의 방해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 그는 "(한국 정부는) 기업인들이 돌발적이고 급진적인 변화로 법치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도록 정치.경제적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충고했다.

◆ 모리스 그린버그=세계적 금융그룹 AIG를 1967년 이후 37년째 이끌어온 유대계 금융인. 한국전쟁 당시 미군 대위로 참전했고, 미국 재계의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로 꼽힌다. 2001년에는 서울시가 출범시킨 '서울국제경제자문단(SIBAC)'의 초대 회장을 지냈고 지난해부터 한.미 재계회의의 미국 측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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