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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폰과 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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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인간이 나무에서 내려와 처음 ‘호모(Homo)’ 속(屬)으로 분류된 게 도구를 사용하면서다. 바로 ‘호모 하빌리스’다. 손을 잘 쓰거나, 도구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손을 쓰면서 두뇌 용량이 커지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인류가 진화의 고속도로에 오른다.

손가락과 두뇌 발달의 상관관계는 과학적으로 규명돼 있다. 그러자 요즘 손가락을 이용한 치매예방법도 나왔다. 양손을 펴고 먼저 한 손의 엄지를 꼽은 뒤 이 손의 검지와 다른 손의 엄지부터 동시에 꼽아간다. 열을 세면 원위치로 돌아온다. 순차 꼽기다. 이때 두뇌세포가 활성화되는데, 적외선 촬영장치로 보면 혈류의 증가가 뚜렷하다.

그래선가. 젓가락 문화와 지능을 연계하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요즘 신혼부부 선물로 ‘아동 지능 젓가락’이 인기다. 젓가락 중간에 엄지와 검지, 중지를 끼울 수 있도록 고리가 붙어 있고, 꼭대기에는 인형이 달려 있다. 일찍부터 젓가락을 사용하면 천재가 된다는 상술이다. 그렇다면 한국형 젓가락이 더 천재적 아닐까. 중국은 굵고 길다. 먼 곳의 기름진 음식을 집기 위해서다. 일본은 짧고 끝이 날카롭다. ‘이치닌마에(一人前)’ 밥상인 데다 공기를 들고 먹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적당한 길이에 끝부분이 넓적하면서도 예리하다. 콩은 물론 심지어 깨도 집는다. 이런 미세함이 소프트파워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게다가 글씨는 또 어떤가. 선과 점에 원과 네모 등 도형이 가미된 그야말로 기하학적 조합이다. 사람을 평가하는 신언서판(身言書判) 기준에서 ‘서(書)’는 글씨를 통해 사람됨뿐만 아니라 ‘지능’까지 짐작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진화의 최첨단에 선 현대인은 손 쓸 일이 줄었다. 글 대신 타이핑, 메모 대신 녹음이다. 비록 ‘독수리 타법’이라도 제법 손가락들을 놀렸는데, 이제 손가락 하나면 족하다. 아이폰·구글폰 등 터치 시대인 것이다. 게다가 두뇌를 쓸 필요도 없다. 구글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로댕이란다. 생각하는 사람 말이다. 키워드만 넣으면 알아서 생각까지 대신해 주는데, 사람들이 생각을 시작하면 구글의 미래가 어둡다는 웃을 수 없는 우스개다.

그렇다면 ‘인류 오디세이’는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 퇴보할까. 아니면 ‘1인 지능’이 ‘다중(多衆) 지능’으로 형태만 바꿔 적응하는 것일까. 마치 개미처럼. 인간 개개인의 독자성이 집단화에 매몰된 요즘, 감성적 터치폰의 확산에서 ‘모바일 매트릭스’에 갇힌 인류를 상상하면 비약일까.

박종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