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월드컵우표 모두 내품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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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전형순(62)씨는 1930년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부터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대회 개최국이 발행한 기념우표 1백20점을 소장하고 있다. 여기에 다른 나라가 낸 것까지 합치면 그가 갖고 있는 월드컵 관련 우표는 모두 4천5백여점에 달한다.

처음엔 그를 우표 수집광(狂) 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만나보니 전씨야말로 열렬한 축구팬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저도 선수였어요"

그는 청소년 시절 축구선수가 되는 꿈을 키우며 태극마크를 우러러봤다.

"축구를 워낙 좋아한 데다 달리기를 잘하고 몸놀림이 민첩했습니다. 공 잘 찬다는 소리를 꽤나 들었죠."

전씨는 충북 청주의 주성중 시절 선수로 뽑혀 인근 학교와 시합을 가졌다. 그러나 일주일에 두시간 특별활동 시간에 체육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공을 차는 게 고작이었다. 청주고에 진학하면서 축구부에 들어갔다. 밤낮 축구에 매달리던 어느날 아버지가 근엄한 얼굴로 그를 불렀다.

"이 녀석아, 건달이 따로 있는 게 아니야. 너같은 놈을 말하는 거야."

한동안 고민하다 그는 결국 그라운드를 떠났다. 하지만 이후에도 축구를 짝사랑하며 가슴앓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팀 공격수 최정민 선수의 화려한 드리블과 슈팅을 볼 때마다 가슴이 쿵쿵거렸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불덩어리가 남아있었던 거죠."

멕시코 월드컵의 감동

전씨는 대학을 마친 직후 화물 운송업 등을 하면서 돈을 모을 만큼 모았다. 치열하게 살다 보니 어린 시절의 꿈이었던 축구를 잠시 잊고 지냈다.

그러나 1986년, 그 욕망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멕시코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던 것이다.

그는 붉은색 유니폼 차림의 우리나라 선수들이 아르헨티나 등 세계 강호들과 맞붙는 모습을 보면서 열병을 앓았다.

"월드컵과 관련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었죠."

그는 월드컵을 '공부'하기로 했다. 그 첫번째 작업이 바로 월드컵 기념 우표 수집이었다.

대회별로 사료(史料)를 뒤졌고, 기념 우표를 하나 둘씩 모으기 시작했다. 미국과 홍콩의 경매시장에 나가 대회별 주요 경기의 비디오 테이프와 기념우표를 사들였다.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의 1회 월드컵 결승전, 한국팀이 스위스 월드컵(54년)에서 보여준 경기, 스웨덴 월드컵(58년)때 축구 황제 펠레가 펼친 신기(神技)에 가까운 플레이, 98년 프랑스의 아트사커 등에 관한 각종 자료를 우표와 함께 차곡차곡 쌓아갔다.

"우표를 한장 한장 어렵사리 구할 때마다 월드컵 선수가 된 것처럼 흥분했습니다."

그가 가장 먼저 구입한 건 스위스 월드컵 우표였다. 당시 대회의 아시아 최종 예선에서 한국이 일본을 물리쳤던 경기를, 그리고 그때 라디오에 귀를 바짝 대고 듣던 그 중계방송이 주었던 감동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우표는 이탈리아 대회(34년)때의 것.

하지만 소량 발행된 탓에 국내 축구인 또는 우표 수집가에게 부탁해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표가 발행된 날 우체국 소인이 찍힌 '초일봉피'는 특히 그랬다.

전씨는 각종 세계우표전시회를 찾아다니며 '34년 월드컵 기념 우표의 초일봉피'를 구한다는 내용의 전단을 돌렸다. 마침내 98년 이탈리아 수집상에게서 이를 6천달러(당시 6백만원 상당)에 구입할 수 있었다.

여태껏 모은 우표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되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20년 세월에 걸친 제 축구 열정인데요. 돈으로 계산할 수야 없죠."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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