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작가가 쓰는 '불륜 드라마' "중년위기… 예쁘게 포장 안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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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위기의 남자'는 작가 부부인 김기호(43)·이선미(39)씨가 공동 집필하고 있다. 이들은 '별은 내 가슴에' '복수혈전' '햇빛 속으로' 등 젊은이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트렌디 드라마에서 잔뼈가 굵었다. 중년 남녀의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이들 키우고 부부싸움을 하면서 아옹다옹 살다 보니 우리 나이에 맞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많은 부부가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표현하진 못하잖아요. 저희가 그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보고 싶어요."

두 사람은 극본을 쓰기 전 "절대 아름답게 포장하지 말자"고 서로에게 다짐했다. 불륜으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고 다시 이를 복구하는데 엄청난 고통과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결말을 어떻게 풀어낼지 아직 결정하진 못했지만 어쨌든 주인공들이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게 만들 예정이다.

두 사람의 작업 방식은 특이하다. 하루 20시간 넘게 컴퓨터 모니터 화면 앞에 나란히 앉아 대사 한마디까지 협의하며 써내려간다. 생각하는 바가 비슷하다 보니 부부가 동시에 같은 대사를 내뱉는 경우도 많다.

그런 게 천생연분 아니냐고 묻자 김씨는 "절대 아니다"고 손사래를 친다.

"공동작업이라고도 할 수 없어요. 몸은 둘이지만 정신은 하나인 '한 사람'이 글을 쓰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같이 사는 부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하루 24시간을 같이 일하고 잠자고 밥 먹으며 지내다 보면 저절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오직 하나의 목표에 두 사람이 매달리다 보니 시너지 효과도 크다. 아이디어도 두배, 시간도 두배인 데다 외롭지 않고 서로 즉각적인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상대방의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시간이 좀 걸리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두 사람은 10여년 전 연극무대에서 만났다. 아내가 방송작가로 방향을 틀 무렵 남편은 제약회사·봉제회사에서 샐러리맨으로 활동했다. 각박한 서울 생활이 싫어 6년 전 강원도 홍천에 내려가 농사를 짓던 이들은 취미삼아 함께 대본을 쓰기 시작했고 이제는 글쓰기가 본업이 됐다. 김씨는 "처음에 글쓰는 아내 옆에서 커피도 타주고 라면도 끓여주면서 어깨 너머로 배웠다"고 회상했다.

하루 종일 같이 지내다 보면 지겨울 법도 한데 이들은 10년째 그렇게 살다 보니 떨어지는 게 오히려 어색하단다.

"옆집 아저씨가 집에 당구대를 들여놨던데 당신이랑 함께 당구연습이나 실컷 해봐야겠어."(김기호) "비디오나 실컷 보고 마당에 채소도 기르자고요."(이선미) 작가 부부는 6월 중순 드라마가 끝나면 할 일들을 벌써부터 얘기하며 부부애를 과시했다.

박지영 기자

불륜(不倫):남녀 관계가 윤리에서 벗어남. 국어사전의 뜻풀이와 달리 우리가 체감적으로 느끼는 '불륜'이라는 단어는 좀 추악하다. 남편이 젊은 여자와 놀아나고 아내가 새로운 남자를 탐하는 일체의 행위에 대해 누군들 너그러워질 수 있겠는가. 그래서 불륜을 담은 TV 드라마는 지탄을 받기 일쑤다. 그런 면에서 MBC '위기의 남자'는 기존의 불륜 드라마와는 다르다. 현실이 싫어 낙향해 다른 여자를 맘에 두는 남편, 그런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는 아내, 첫사랑을 못잊어 두사람의 주변을 맴도는 옛 애인 모두 비난보다는 동정표를 던지게 만든다.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자극적이지 않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묘사한 작가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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