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古代는 가야를 포함 '四國시대'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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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우리 나라에서 가야사 연구가 본격화했던 것은 1980년대 초반부터다. 이를 주도해 온 대표적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 신간 『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의 저자 김태식(홍익대)교수다. 흔히 가야사 연구의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로 사료의 빈곤을 꼽는다. 저자는 종래 그 성격에 문제가 있어 이용을 꺼려왔던 『일본서기』 등의 관련 자료를 비판적으로 활용하는 한편 고고학 연구 성과를 적극적으로 이용함으로써 가야사 연구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간의 연구 성과를 종합해 정리한 이 책은 가야사에 대한 가장 신뢰할 만한 개설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고대사를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가 아니라 거기에 가야를 포함한 '사국(四國)시대'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명실상부한 삼국시대는 562년부터 660년까지 불과 98년 간에 불과하다.

3세기 이후부터 가야연맹은 삼국과 독자적으로 외교관계를 맺는 등 하나의 정치체로서 역할을 하였으므로 적어도 4세기께부터 가야가 망하는 562년까지는 '사국시대'라고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야사 재정립의 필요성은 가야사 자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및 동아시아 고대사 전체의 맥락 속에서 보아도 절대적"이라는 입장에서 나온 이 대담한 제안을 앞으로 한국고대사 연구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매우 흥미롭다.

저자는 다른 나라 사람들도 인정하는 가야의 힘을 우리가 의심하고 있다고 안타까워 한다. 지금까지 발굴된 고고학적 성과로 볼 때 가야가 고대 왜국이나 백제 또는 신라의 지배를 받았다고 하는 종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오히려 수준높은 기술, 특히 제철 기술과 토기문화 속에서 독자적인 문화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일본의 고대사를 중심에 놓는 역사 서술과 백제나 신라 중심으로 보는 선입견을 모두 거부한다.

『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는 모두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권 '수로왕에서 월광태자까지'는 가야연맹체의 성립과 변화, 멸망을 통시대적으로 살핀 시대사로서 '가야통사'에 해당한다. 제2권 '가야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나'는 가야연맹체의 정치·경제·사회·사상·영역 등을 정리한 분류사다. 종래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정치·사회구조나 사상 등을 다루었다.

제3권 '왕들의 나라'는 가야연맹체에 속했던 여러 나라들의 역사를 정리한 것이다. 맹주국이었던 금관가야, 대가야, 아라가야는 물론 여러 소국들의 역사도 최대한 살폈다.

이 책은 관심 있는 일반인들에게는 가야사에 대한 안내서로서, 학생들이나 전공자들에게는 연구의 길잡이로서 손색이 없다. 지도 58장, 유물과 유적 실측도 1백11장, 사진 2백54장 등 시각 자료도 풍부하다.

지도와 유적 사진은 저자가 직접 그리고 찍은 작품이며, 나머지는 1백여권에 이르는 발굴 보고서, 박물관 도록 등에서 발췌한 것이다.이번 3부작이 물론 가야사 연구의 끝이 아님도 명백하다. 이 책은 앞으로 가야사 연구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디딤돌로서 소중하다.

조인성 교수

<경희대 사학과·한국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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