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마켓에 매달 쌀 1t씩 전달…얼굴없는 '15일 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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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배달 왔어요!"

16일 오전 10시 서울 도봉구 창동 서울푸드마켓. 배달원의 힘찬 목소리와 함께 20kg 들이 쌀자루 50개가 매장에 쌓이자 30평 남짓한 공간이 금세 가득 찬다.

서울시가 소외계층에 식품을 무료 제공하기 위해 지난해 3월 문을 연 이곳에 쌀이 배달된 것은 지난 2월. 익명의 기부자가 "돕고 싶다"며 인근 농협을 통해 쌀을 보내왔다. 이후 매달 15일 전후면 어김없이 1t씩 배달된 '깜짝 쌀 선물'은 그동안 5000여명의 끼니를 해결하며 푸드마켓의 든든한 동반자로 자리잡았다.

푸드마켓은 그동안 '15일 천사'의 따뜻한 이웃 사랑을 주위에 알리고 싶어 여러 차례 설득했지만 기부자는 "아무도 모르게 돕고 싶다"며 "알려질 경우 후원을 끊을 것"이라고 말했다. 푸드마켓 곽은철(38)소장은 "쌀이 최고 인기인데도 기탁자가 적어 가장 아쉬운 품목"이라며 "'15일 천사'가 매달 보내주는 쌀은 푸드마켓의 가장 반가운 손님"이라고 말했다.

쌀이 오는 날은 푸드마켓이 가장 풍성하고 바쁘다.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가도록 2kg씩 500봉지에 나눠 담다 보면 직원 세 명으로는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 톨이라도 떨어뜨릴까 조심스러운 손길로 쌀을 담던 자원봉사자 이형숙(55)씨는 "쌀과 김치만으로 끼니를 때우는 분들이 오는데 그것도 부족할 땐 마음이 아프다"며 "오늘 쌀이 좋은 걸 보니 가져가시는 분들 밥맛이 좋겠다"라며 활짝 웃었다.

기초생활 수급자가 이용 대상인 푸드마켓은 돈은 받지 않는 수퍼마켓이다. 그러나 이용객에 비해 기탁 식품의 종류와 양이 부족해 한 달에 한 번 다섯 품목만 가져갈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서울에는 창동점에 이어 지난 8일 양천구 자원봉사센터 1층에 2호점 '양천 해누리 푸드마켓'이 문을 열었다.

▶ 서울푸드마켓 곽은철 소장(오른쪽 끝)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15일 천사'에게서 기증받은 쌀 1t을 봉지에 나눠 담고 있다.[김춘식 기자]

창동점이 올해 기탁받은 식품은 11월 현재 9억원어치로 지난해(2억9200만원)에 비해 크게 늘었지만 이용객도 지난해 2900명에서 5100명으로 증가해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특히 주식인 쌀.라면 등의 곡류와 닭고기.돼지고기 등 육류는 전체 기탁품의 20%도 안돼 절대적으로 모자라는 실정이다. 기업의 후원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개인 기탁자는 10여명에 그치고 있다.

곽 소장은 "대규모 후원도 좋지만 개인의 작은 도움이 푸드마켓을 이끌어 가는 데 큰 힘이 된다"며 "내년에는 더 많은'15일 천사'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후원 문의 02-907-1377.

김은하 기자 <insight@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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