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만발 아카데미상 표류 직전 대종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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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올 아카데미 시상식은 '아름다운 쇼'였다. 아카데미 74년 역사상 최초로 흑인 배우에게 남녀 주연상을 안기는 이변을 연출했다. 일부에선 아카데미의 기막힌 정치학에 혀를 내둘렀으나 숱한 영화팬을 즐겁게 해준 것은 부인할 수 없을 터. 밋밋한 시상식을 값나가는 상품으로 포장하는 할리우드의 전술이 놀라울 뿐이다.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경연대회'인 제39회 대종상 영화제(www.daejong.org)가 다음달 26일 코엑스 컨벤션 오디토리엄에서 열린다. 영화계의 단합을 표방해 영화인협회와 영화인회의가 공동주최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엔 영화인협회 단독 주최로 열린다. 지난해 행사 진행에 불만을 품었던 영화인회의가 '동승'하지 않은 것이다.

SBS도 빠질 전망이다. 심지어 시상식 생중계 여부마저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한국 영화계의 볼륨은 계속 커가고 있지만 대종상의 외형은 오히려 줄어든 모양새다. 더 큰 문제는 내실이다. 영화계에선 지난해 행사를 마치고 바로 올 행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대종상 사무국을 상설 체제로 전환해 행사의 안정적 운영, 객관적 심사를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는 영화인은 없었다. 부실한 시상식에 대한 성토는 빗발쳤으나 '망가진' 제도를 수습하려는 노력은 드물었다. 결국 이번에도 연초에야 집행위 사무국이 부랴부랴 구성되고, 지난해에 드러났던 문제점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올해 달라진 점이라면 일반인·네티즌의 의견을 작품상·감독상·주연상 등의 결정 과정에 포함시킨다는 것. 지난해 폭발했던 영화팬의 불만을 수용하자는 취지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대종상을 외면한 게 심사 과정에서 제외됐기 때문은 아닐텐데…. 오히려 심사위원단 내부의 잡음을 줄이는 묘책 마련이 시급한 일이 아닐까 싶다.

영화제 사무국만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영화진흥위원회 지원금이 넉넉하지 않고, 전담 직원도 다섯명뿐이다. 애초 움직일 공간이 협소한 것이다. 영화계 전체의 적극 참여가 절실하다. 게다가 내년엔 대종상이 불혹의 나이가 되는데…. 아카데미도 애초엔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의 돈줄로 시작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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