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환자는 서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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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경남 하동군 고전면에 사는 김종문(50)씨는 척추염 때문에 다리를 굽히기 힘든 1급 장애인이다. 지난해 3월 목을 다쳐 진주 경상대병원에 입원했던 그는 퇴원 후 통원치료를 받아왔다. 하지만 요즘 제때 병원에 가지 않아 병세가 나빠지고 있다.

金씨는 "경상대병원까지 왕복 네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병원 가기를 자주 포기한다"고 말했다. 金씨가 사는 지역에는 척추염을 치료할 마땅한 병원이 없다. 그나마 유일했던 S병원이 지난해 초에 부도가 나 문을 닫았다.

의약분업 후 문을 닫거나 일부 진료과목을 폐쇄한 중소병원이 크게 늘면서 지방 환자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우수한 의료기관이 대도시에 집중돼 가뜩이나 양질의 진료를 받기 어려웠던 지방 주민들이 더욱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지방(서울과 6대 광역시 제외)에서 무려 43개의 중소병원이 도산했다. 분업 전인 1999년에는 27개가 망했었다. 의사를 구하지 못하거나 경비를 줄이기 위해 일부 진료과목을 없애는 병원도 갈수록 늘고 있다.

전남 강진군의 유일한 종합병원인 강진의료원은 분업 후 산부인과·소아과·피부과·비뇨기과 등 4개 과를 폐쇄했다. 이에 따라 산부인과를 제외한 3개 과를 다루는 병·의원이 군(郡)내에는 없다. 주민 김현주(34)씨는 "애가 아프면 버스를 타고 장흥까지 나간다"면서 "감기에 걸리기 쉬운 환절기에는 하루 하루가 불안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강진군의 의료급여(옛 의료보호)환자들이 병원을 방문한 횟수는 99년보다 6.4% (전국 평균 증가율은 27.2%)느는 데 그쳤다. 경남 하동군·강원도 태백시의 증가율도 5%에 불과했다.

의약분업 후 개업 열풍이 불면서 월급 의사 구하기가 힘들어지고 이들의 인건비가 급등하면서 지방 병원의 경영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경남 삼천포 제일의원 정판준 원장은 "33평 아파트 전세를 제공하고 월 1천만원을 준다 해도 문의조차 없다"고 말했다.

연세대 의대 조우현 교수는 "거점(센터)진료기관의 역할을 하는 농어촌의 중소병원이 이렇게 부실해지면 지역 의료서비스 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몇몇 대형 병원들은 병실을 계속 늘리고 있다. 99년 병원당 8백20개이던 대학병원의 병상 수는 현재 8백63개로 증가했다. 서울대병원·신촌세브란스·삼성서울병원 등은 8백~1천병상 규모의 새 병동을 공사 중이거나 건설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거점 역할을 하는 중소병원은 건강보험공단이 인수하고▶공중보건의(군 복무 의사)를 취약지역에 우선적으로 배정하며▶시골 병원에 진료비 가산율을 적용해주는 등의 대책을 제시했다.

신성식·윤혜신·백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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