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디 포스터의 '母性본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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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양들의 침묵'의 지적인 FBI 수사관 클라리스 스털링으로 분해 식인귀 렉터 박사와 팽팽한 심리적 교감을 나누는 연기를 펼쳤던 조디 포스터(40). 그녀가 10여년 만에 스릴러 '패닉 룸'으로 돌아왔다.

이 영화는 '세븐'의 데이비드 핀처가 감독했으며 '쥬라기 공원''미션 임파서블'의 작가 데이비드 코엡이 각본을 썼다. 지난 29일 미국에서 개봉하자마자 박스 오피스 정상에 올랐다. 포스터는 맨해튼 고급 주택으로 이사간 첫날 집에 침입한 세명의 강도들에게서 몸이 약한 딸을 지켜내는 이혼녀 멕 역을 맡았다. 패닉 룸은 강철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집 안의 격리 공간이다. 멕은 딸과 이 방 안에 갇혀 강도들과 대치하다 끝내 이들을 경찰의 손에 넘기는, 가냘프지만 강인한 캐릭터다.

3일 오후 일본 도쿄(東京)의 데이코쿠(帝國)호텔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그녀는 "가족의 안전을 지킨다는 '패닉 룸'의 주제가 9·11 테러로 상처받았던 미국 국민들에게 호소력을 지녔던 것 같다"며 기뻐했다. 이틀 전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 연푸른색 바지 정장 차림으로 등장했던 포스터는 이날은 운동화를 신고 에비앙 물통을 든 간편한 복장이었다. 간간히 하품을 하는 등 피로한 기색이 엿보였지만 "연기가 좋았다"는 기자들의 칭찬에는 "생큐(Thank you)"를 빼먹지 않았다.

1999년 별 주목을 받지 못했던 '애나 앤드 킹'이후 3년 만의 스크린 나들이인 이 작품을 찍기 위해 그녀는 지난해 두 가지의 커다란 '타협'을 했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 요청을 사양했고, 둘째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았음에도 촬영에 임했던 것이다. 그녀는 "촬영이 다섯달 반이나 걸리는 바람에 무척 힘들었다. 촬영장에서도 시간만 나면 잤다"고 털어놨다. 몸에 꽉 달라붙는 탱크톱을 입어야 했기 때문에 임신 중이라는 사실이 드러날까봐 무척 고민했다고. 종반부에는 불어나는 가슴과 배를 감당하지 못해 헐렁한 스웨터를 걸쳤다고 한다.

그녀는 사실 무릎 부상이 도져 도중하차했던 니콜 키드먼의 '대타'로 기용됐었다. 포스터는 "'세븐'을 본 이래 늘 같이 일하고 싶었던 핀처 감독 때문에 흔쾌히 응했다"고 말했다. "핀처는 "내 36년 연기 인생에서 만난 가장 훌륭한 테크니션이며, 자신이 찍고자 하는 것에 대해 가장 명확한 생각을 가진 인물이다."'완벽주의자'감독을 만난 덕에 그녀는 똑같은 장면을 1백7회나 찍어야 했다고. 시종 침착하고 조리있게 인터뷰에 응했던 그녀는 올해 러셀 크로의 어깨 부상으로 중단했던 '플로라 플럼'의 감독·제작을 마무리할 참이다.

도쿄=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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