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高 가자" 대입 뺨치는 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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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 19일 자정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후곡마을 학원가.

네거리를 중심으로 반경 2백여m 안에 밀집한 10여개의 학원에서 3백여명의 중학생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데리러 온 학부모들과 뒤섞여 매일 밤 북새통을 이루는 이들은 외국어고 입시반 학생들이다.

K학원에 중2 딸을 보내는 학부모 모(43·여·고양시 탄현마을)씨는 "수도권 고교 재배정 소동을 보면서 딸을 외고에 보내 대학입시를 준비시키는 것이 가장 유리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수도권 지역에 외국어고 입학 바람이 불어닥쳤다.

외고의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데다, 올 초 안양·고양·분당·의왕·군포 등 경기도 대부분 지역의 고교 평준화 시행으로 골라서 진학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 되면서다.

특히 지난달 고교 재배정 사태도 과열을 부추긴 요인이 됐다. 현재 수도권에는 서울 6개(정원 2천1백명), 인천 1개(3백50명), 경기 3개(1천1백41명) 등 10개의 외고가 있다.

◇장거리 통학도 감수=씨는 "학부모들 사이에 '반에서 10등 이내 성적이면 무조건 외고 입시를 준비시키는 게 상책'이라는 인식이 요즘 급속히 퍼졌다"고 말했다.

학원들도 수시로 외고 입시 설명회를 열고 "중학교 3년간만 체계적으로 준비하면 합격이 무난하다"며 경쟁을 부추긴다.

일산·분당 등에선 중학교 1,2학년생을 대상으로 매일 여섯시간씩 일주일에 4~5회 강의하는 스파르타식 학원도 인기여서 수강생이 지난해에 비해 서너배씩 늘었다.

평택에서 분당의 Y학원 외고반에 다니는 金모(14·P중2)군은 "하루 네시간의 학원 수업을 듣기 위해 왕복 두시간을 차에서 보낸다"고 말했다.

경기도 파주에서 일산의 G학원에 다니는 鄭모(14·H중2)양은 "친구 중에는 학원 외고반 시험에 합격하려고 따로 과외를 받는 애들도 있다"고 말했다.

안양시 평촌의 S학원측은 "과천외고와 안양외고 등에 들어가기 위해 외고준비반에 등록한 수강생이 지난해의 세배로 늘었다"고 말했다.

◇딴살림 차리기도=외고 바람은 입학한 뒤에도 이어진다.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명덕외고 주변은 이 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킨 학부모들이 몰려 전세 품귀현상까지 빚는다.

올해 입학한 딸과 24평 주택 2층에 전세로 살고 있는 金모(44·여)씨는 "일산 아파트에 사는 남편과는 주말에만 만난다"고 말했다.

이 지역 부동산 관계자는 "학기 초에는 몇달 전에 예약을 해도 집을 구하기가 힘들다"며 "32평짜리 전세가 서울 도심 수준인 1억6천만~1억7천만원"이라고 소개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중학생을 입시 지옥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평준화인 만큼 이런 부작용은 감수해야 한다"며 "비선호 지역 일반고에 우수교사와 시설을 집중 지원해 평준화 도입의 취지를 살리겠다"고 말했다.

홍주연·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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