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밥 신화'를 던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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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현대 유니콘스의 연습생 투수 최환인(23). 그는 지난해까지 직장인 야구팀인 제일유리에서 뛰다가 프로야구단에 입단한 이색 경력의 선수다.

최환인은 동산고 2학년 때까지는 동갑내기인 현대 에이스 김수경(인천고졸)과 더불어 인천에서는 꽤 알려진 유망주였다. 하지만 3학년에 올라가면서 슬럼프가 닥쳐왔다.

아무리 제대로 공을 던지려 해도 어깨가 말을 듣지 않았다. '쪼단'이 난 것이다. '쪼단'은 야구선수들이 쓰는 은어로 어깨 근육에 있는 가상의 기록장치가 완전히 망가진 상태를 말한다.

감독의 배려로 타자로도 뛰어봤지만 한계가 있었다.

"저를 원하는 대학이 없었어요. 입학금과 훈련비를 내면 고려해 보겠다는 곳은 있었지만 장학금도 못 받으면서까지 야구를 해야 하느냐는 회의가 일었습니다."

게다가 아버지(최춘만·51)의 사업이 IMF 한파로 어려워져 학비를 달라고 손을 벌릴 수도 없었다.

"졸업식이 다가오자 그래도 배운 게 야구밖에 없다는 생각에 다시 공을 던져봤습니다.그런데 그렇게 말을 안 듣던 공이 희한하게도 제대로 들어가더라고요."

그러나 너무 늦었던 것 같다.졸업을 했지만 갈 곳이 없었던 그는 동산고에서 후배들과 어울려 훈련하며 내일을 기약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제일유리의 장정기 상무를 만났다.

제일유리는 인천시 남동구 연수공단에 있는 건실한 중소기업이지만 선수들이 마음놓고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입사하자마자 생소한 유리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기술이 없으니까 주로 포장하고 나르는 일을 했죠. 공장 안이 너무 더워 땀을 무척이나 많이 흘렸습니다. 더 힘든 건 야간근무였어요. 근무 후에는 잠도 못 자고 훈련장으로 달려가고…. 그때는 세시간 이상 자보는 게 소원이었죠."

제일유리 투수로 있으면서 서서히 이름 석자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2000년 중반에는 몇몇 프로구단의 스카우트가 관심을 갖게 됐다. 마침내 2001년 10월 말 현대의 2군 훈련장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고, 며칠 후 '계약금 없는 연봉 2천만원'의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그는 지금 현역시절 '포크볼의 마법사'로 불렸던 정명원 투수코치에게서 집중지도를 받고 있다. 정코치는 "2군에는 현재 25명의 투수가 있다. 1군에 진입할 수 있는 선수는 한두명 정도니까 결국 본인이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공장에서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아주 행복합니다.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으니까요. 큰 선수가 되고 말테니 두고 보십시오." 최환인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고양=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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