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남한서도 천안함 조사 믿지 않는다’ 생떼 공세 펼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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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4일 오후 3시(한국시간 15일 오전 4시)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한국 민·군 합동조사단으로부터 천안함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 브리핑을 받는다. 사진은 북한의 2차 핵실험 후인 지난해 6월 유엔 안보리 이사국들이 대북 제재 결의안 1874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모습. [중앙포토]

1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엔 두 가지 통보가 날아들었다. 하나는 한국으로부터 왔다. 참여연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인 클라우드 헬러 멕시코 유엔대사 앞으로 보낸 공개 서한이었다. e-메일과 팩스로 안보리 의장은 물론 15개 이사국과 일부 비이사국에도 보낸 것이었다. e-메일을 열어본 대표부는 당황했다. 한국 정부가 발표한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를 믿을 수 없으니 안보리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때도 신중을 기해달라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14일엔 한국 민·군 합동조사단이 안보리 이사국을 대상으로 천안함 조사결과 브리핑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국대표부 관계자는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간 안보리 의장으로부터 또 다른 통보가 왔다. 14일 남한 발표 후 북한도 안보리 이사국을 대상으로 입장을 밝힐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했다는 전갈이었다. 대표부는 안보리 의장실에 항의했다. 그러나 의장실에선 “11일 오후 북한 측에서 갑작스럽게 소명 기회를 달라고 요구해왔다”며 “북한도 이해당사국이어서 브리핑 기회를 줄 수밖에 없다”고 잘랐다. 결국 의장실과 협의 끝에 남한이 먼저 브리핑을 한 뒤 북한에 소명 기회를 주는 형식으로 절충했다.

잠시 후 한국 대표부에는 안보리 이사국 외교관들로부터 전화가 쇄도했다. “참여연대 서한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는 문의였다. 유엔 외교가에선 시민단체가 안보리에 공개 서한을 보내는 게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국 정부가 안보리 제재를 추진하고 있는 마당에 시민단체가 이를 정면 반박하는 자료를 배포한 건 극히 이례적이다. 대표부 관계자는 “내부 합의도 못하고 어떻게 안보리로 왔느냐는 비아냥에 가까운 말을 듣기도 했다”며 “그만큼 남한에는 언론 자유가 보장돼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은 했지만 말발이 먹히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민·군 합조단의 조사결과 브리핑을 계기로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 논의를 본격화하려던 한국대표부 전략도 암초를 만났다. 북한이 참여연대의 서한을 근거로 남한 정부의 천안함 조사결과를 부정하고 나올 공산이 커졌기 때문이다. 자칫 남한 측 브리핑도 조사결과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참여연대가 제기한 각종 의혹을 해명하는 데 급급해질 수도 있다. 북한 제재에 거부감을 보여온 중국·러시아가 ‘물타기’를 하고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남북한은 고사하고 남한 내부에서조차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문제를 안보리에서 다루는 게 적절하느냐는 논리를 펼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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