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살리자” 안 먹힌 필립스 전구 … 6년 뒤엔 “전기료 줄여준다” 대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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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생활용품업체 P&G는 친환경세제 ‘에리얼’을 2005년 출시했지만 시장 반응은 미지근했다. P&G는 고민 끝에 이듬해 대대적인 ‘30도에 온도를 맞춰 주세요(Turn to 30)’ 캠페인을 시작했다. 에너지 사용을 줄이기 위해 세탁기 물 온도를 30도로 낮추자는 내용이었다. 그러고는 에리얼 판매 수익금의 일정액을 친환경 민간기구에 기탁한다는 사실을 널리 알렸다. 2007년 미국의 저온 세탁 가구 비율은 17%포인트 증가했고, 에리얼 사용 가구 비율도 27%포인트 올라갔다.

글로벌 생활용품 업체 P&G의 친환경세제 ‘에리얼’의 ‘세탁기 온도를 30도에 맞추자’ 마케팅 포스터(왼쪽). 영국 디자인 회사 MAQ가 디자인한 토끼 모양 쓰레기 봉투(가운데). 실시간으로 PC 전원 끄기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 숫자와 절약되는 전기료를 알려주는 hp의 컴퓨터 화면(오른쪽). [오리콤 브랜드전략연구소 제공]

전구·가전메이커 필립스 역시 1994년 기존 전구보다 전기를 75% 덜 먹는 전구를 개발해 ‘어스라이트(earthlight)’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뒤 “어스라이트로 지구를 살리자”는 마케팅을 폈지만 잘 팔리지 않아 곧 단종했다. 필립스는 2000년 똑같은 제품의 이름을 ‘마라톤 전구’로 바꿔 내놓으면서 “전기요금을 줄여 준다. 그뿐 아니라 1만 시간 동안 지속돼 경제적”이라며 소비자 혜택에 초점을 맞췄다. ‘마라톤 전구’는 출시 10년이 넘은 지금까지 필립스 전구 중 판매량이 가장 많은 제품 가운데 하나다.

기업들마다 그린 이미지를 부각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하지만 똑같은 그린 제품을 내놓거나 그린 마케팅을 펴더라도 실패하는 경우가 있고, 성공하는 경우가 있다. 오리콤 브랜드전략연구소는 최근 국내외 그린마케팅 사례 100여 개를 분석해 성공 비법을 뽑아냈다.

필립스의 경우는 적게 써서 얻은 이익을 소비자에게 명확히 전달하는 ‘레스(Less)’ 공략법을 써서 성공한 경우다. 소비자에게 더 많이 쓰면 이익이라는 점을 널리 알리는 ‘모어(More)’ 기법도 있다. "많이 소비할수록 당신에게 좋아”라는 식의 접근법이다. 풀무원 그린서클의 경우 화학 첨가물을 단 1%도 넣지 않겠다는 0% 약속을 녹색 동그라미 모양의 ‘그린 서클’로 표현해 친환경식품을 먹을수록 소비자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알렸다.

소비자의 습관 변화를 촉구하면서 기업의 이미지 상승까지 꾀하는 ‘스위칭’ 전략도 효과적이다. P&G의 ‘30도로 맞추세요’ 캠페인은 스위칭 기법으로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영국 디자인회사 MAQ는 야외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가지고 즐겁게 귀가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귀여운 그림이 인쇄된 쓰레기봉투를 제작·판매해 봉투 판매 수익금을 환경보호단체에 기부한다. 디자인 전문회사로서의 이미지 강화에 성공했다. 국내 항공사 진에어는 ‘세이브 디 에어’ 캠페인을 통해 짐 없는 승객에게 할인쿠폰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친환경제품을 강조하기 위해 생산지·전력·성분·용기 등을 소비자에게 자세히 알리는 ‘라벨링’ 마케팅 기법을 채택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미국 신발업체 팀벌랜드는 2006년 이후 신발상자 겉면에 한 켤레를 만드는 데 들어간 에너지를 표시하고 있다.

파트너십을 통해 소비자 신뢰를 높이는 방법도 있다. 미국 클로락스는 코코넛·옥수수·레몬 기름에서 추출한 99% 무해한 친환경세제 ‘그린 웍스’를 내면서 환경단체 시에라클럽과 협약을 맺었다. 그린 웍스 제품에 시에라클럽의 로고를 넣어 소비자의 신뢰도를 높였다.

글로벌 PC업체 hp는 회사 특성에 맞게 위젯·트위터 등을 잘 활용한 경우다. 안 쓰는 PC를 끄자는 운동을 벌이며 5개 국어로 위젯(날씨·계산기·시계 같은 간단한 기능과 각종 콘텐트를 담고 있는 작은 크기의 응용 프로그램)을 제작해 실시간으로 몇 명이 동참하고 있고, 개개인의 참여로 얼마나 전기가 절약되고 있는지를 생중계로 보여줬다.

오리콤 브랜드전략연구소 허웅 소장은 “성공한 그린 마케팅 사례를 살펴보면 그린 마케팅이 소비자에게 주는 이득을 구체적으로 알린 경우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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