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철학을 개척한 이 시대 참스승 : 趙要翰 전 숭실대 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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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이 세상에 태어나 누구에게도 신세를 지지않고 깨끗하게 살다 가신 분입니다."

지난 4일 76세를 일기로 타계한 조요한(趙要翰) 전 숭실대 총장에 대해 소광희(蘇光熙)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회고했다.

蘇교수는 1950년대 중반 한국의 대표적인 철학 연구단체인 '한국 철학회'가 발족할 당시 고인에 이어 간사를 맡으면서 오랫동안 친분을 쌓았다.

蘇교수는 "고인의 삶에는 '사랑'이라는 기독교 정신이 바탕에 깔려 있다"며 "한번도 화를 내지 않은 철학계의 어른이었다"고 말했다.

고인은 이처럼 인자했으나 도리를 벗어난 일에 대해선 절대 타협하지 않은 원칙주의자였다. 신군부가 등장해 서슬이 퍼렇던 80년 당시 고인은 기독교교수협의회 회장으로 '지식인 103인 선언'에 참여해 숭실대에서 해직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후 신학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는 등 힘든 세월을 보냈다. 그는 정부가 해직교수의 복직을 허용하는 조치를 내린 84년 9월에야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듬해 숭실대 5대 총장으로 선임됐으나 해직교수였다는 이유로 문교부(현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반대해 한동안 취임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의 현실참여는 혁명이나 출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도주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인은 인정이 많아 권투시합 중계를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였지요. 학(鶴)같은 성품을 지닌 분이지요."

서울중앙병원 빈소에 모인 제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고인을 '참스승'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그리스 철학을 전공한 그는 『희랍철학 연구』 등 많은 저서를 내놓았다. 중년 이후에는 예술철학에 관심을 쏟았다.

고인은 71년 서울대 미학과에서 예술철학과 미술사를 강의하면서 본격적으로 예술철학 분야를 개척했다. 그의 저서 『예술철학』은 지금도 미학도나 예술학도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꼽힌다. 당시 고인에게서 배운 유홍준(兪弘濬·명지대)·황지우(黃芝雨·예술종합학교)교수는 "관념미학에 지친 제자들에게 고인의 강의는 신선한 충격이었다"며 "스승이라기보다는 아버지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인이 예술철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 시절 화가 김환기씨의 집에 머문 인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환기미술관 초대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유홍준 교수는 "그리스 철학은 고인을 자연스레 예술철학으로 유도한 측면도 있지만, 미적 사고를 논리적으로 체계화하는 데도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고 그의 철학세계를 설명했다.

함북 경성 출신인 고인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가장 노릇을 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창한(경희대 명예교수)·명한(서울대 교수)씨 등 두 동생과 경진(서울시립대 교수)·경덕(서울대 교수)씨 등 두 아들을 모두 교수로 키워내 학자 집안을 일궜다.

고인은 최근까지 '한국의 미(美)란 무엇인가'를 탐구하며 새 책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후학들은 고인이 건강 악화로 이를 완성하지 못한 점을 안타까워했다.

김창호 학술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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