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채널 '포르노그래피의 역사' 영원한 화두 性愛 東西古今 '총정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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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性)에 대한 호기심만큼 인간의 상상력을 사로잡는 것도 없을 듯싶다. 지역과 시대에 따라 얼마나 억제하고 풀어주느냐 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기본적으로 어느 인간 사회나 성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나름의 틀을 갖추고 있는 법이다.

특히 오늘날 포르노라고 불리는, 성행위를 직접 표현하는 방식은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변천을 겪었다. 그리고 그 변천의 근저에는 항상 매체의 발전이라는 기술적인 요인이 자리잡고 있다.

히스토리 채널이 6일부터 사흘간 방영(2회분 연속)하는 '포르노그래피의 역사'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포르노의 표현 기술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10년에 걸쳐 제작된 이 다큐멘터리는 로마 상류계층의 그림과 조각을 비롯해 인쇄물·영화·비디오·인터넷 등 매체가 바뀌면서 성행위의 표현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추적한다.

▶1부 '로마시대의 유물'(6일 밤 12시),2부 '중세 교회와 에로스'(7일 새벽 1시)=18세기 중반 이탈리아의 한 농부가 우연히 폼페이의 유적을 발견했을 때 사람들은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성애(性愛)장면이 노골적으로 그려진 그림이나 조각이 대거 발굴됐기 때문이다.

외견상 금욕주의가 지배했던 당시 빅토리아 시대인들은 자기네들이 동경했던 로마시대의 상류사회가 이처럼 '외설'적이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15세기에 인쇄술의 등장으로 다량 복제가 가능해지면서 포르노가 큰 사회 문제가 됐다. 성행위 자세를 새긴 사람은 투옥됐고 판화는 파괴됐다. 판화에서 영감을 얻어 쓴 시도 파기됐다.

▶3부 '19세기 사진혁명'(7일 밤 12시),4부 '포르노의 영화시대'(8일 새벽 1시)=1839년 파리에서 최초로 포르노 사진이 탄생했지만 값이 너무 비싸 일부에만 유통됐다. 1850년에 포르노 사진이 본격 유통되기 시작했지만 프랑스 정부는 수출용으로만 허용했고 그 결과 포르노 딜러라는 신종 직업이 등장하기도 했다.

영화의 등장으로 포르노의 표현 영역은 더 넓어졌지만 1960년대 초엔 대부분 국가에서 불법이었다. 60년대 포르노 영화 산업의 주역인 브라운이라는 독일 감독은 당시 포르노가 합법적이던 유일한 국가인 스웨덴으로 가서 포르노 영화를 팔았다.

▶5부 '비디오의 물결'(8일 밤 12시),6부 '디지털 섹스'(9일 새벽 1시)=70년대 중반 등장한 비디오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가정을 파고 들었다. 하루 이틀이면 간단히 촬영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포르노 비디오는 포르노 영화를 급속히 대체했다.

20세기 마지막 10년간의 신기술은 포르노그래피를 우리 문화와 일상 깊숙이 스며들게 했다. CD롬이나 인터넷 등은 포르노의 접근방식과 소비자 층을 변화시켰다. 앞으로 성애는 더 이상 신체 접촉을 필요로 하지 않을지 모르며 사람들은 포르노를 레저 활동처럼 즐기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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