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블로와 천안함은 닮았다…네티즌 수사대의 그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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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면 대학교 씰(seal·직인) 모양이 조금 다릅니다.""증명서(copy of certified pdf)라는 글자가 원본보다 간격이 큽니다."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11일 오전 올라온 글이다. 가수 타블로(30·본명 이선웅)가 학력을 위조한 증거라며 올린 것이다. 타블로가 같은날 자 중앙데일리를 통해 "미국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한 게 맞다"며 재학 시절 성적표와 담당 교수의 확인서까지 공개했지만, 이런 글은 계속 올라오고 있다. 타블로가 어떤 증거를 제시해도 네티즌들은 "위조된 증거"라고 그를 몰아붙이는 양상이다. "타블로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수 없다"는 네티즌도 있다. 네이버 카페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는 중앙데일리가 성적표와 학력인증서를 공개한 10~11일 사이 회원수 5만명을 넘었다.

타블로의 학력 위조를 둘러싼 음모론이 증폭되고 있다. 최근 한 인터넷 매체가 직접 스탠포드 대학으로부터 졸업 증명서를 발급받기도 했지만, 음모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해명자료가 나올수록 불신이 증폭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제시되는 증거는 모두 "위조 자료"라고 몰아붙인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천안함 사고 발생 원인을 믿지 않던 일부 네티즌의 심리와 유사한 것으로 진단한다.

"네티즌들은 사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아요. 음모론을 일종의 놀이로 여기는 겁니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문조 교수는 "네티즌들은 진실을 게임의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에 다양한 음모론을 제기하고 '아니면 말고' 식의 논쟁을 벌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포토샵 등의 프로그램으로 이미지·영상을 조작하는 게 쉬워지면서, 온라인을 통해 접하는 것들은 조작됐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쉽게 갖는다는 것. 김 교수는 "한번 음모론이 제기되면, 이를 추종하는 이들은 경쟁하듯 그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내놓는다. 나중엔 '자기 편'의 생각이 틀려도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초기에 학력 위조 논란의 발단이 된 것은 한 미국 거주 네티즌의 의혹 제기였다. 그는 마치 수사하듯 타블로의 기존 발언을 꼬투리잡아 "스탠포드를 나온 게 아니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서울대 곽금주 교수(심리학)는 "'내가 남들이 모르는 이만큼의 정보를 알고 있다'는 데서 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런 욕구를 온라인 공간에서 쉽게 분출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시작된 학력위조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진 것은 '소문의 법칙'에 따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즉 ▶소문의 내용이 부정적일수록 ▶온라인 공간처럼 대면접촉이 적을수록 ▶동참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논란이 소용돌이처럼 부풀어오른다는 거다. 곽 교수는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는 걸 보면 뭔가 있나보다'하는 생각이 들어 걷잡을 수 없이 소문이 확산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일부 네티즌들이 놀이처럼 제기하는 의혹이 특정 개인에겐 폭력이 된다는 점이다. 곽 교수는 "최근 연예인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악플과 각종 논란 등으로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데 논란 자체가 개인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성숙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선승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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