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 개정안 통과] 재계 "여권이 기업 고충 고려안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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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9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놓고 재계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투자에 걸림돌이 된다는 등의 재계의 거듭된 주장이 개정안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대규모 기업집단(그룹) 소속 금융.계열사가 다른 계열사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 한도가 30%에서 15%로 축소돼 외국인에게 경영권을 뺏길 수도 있다는 기업들의 걱정이 더 커질 전망이다.

◆ 개정 내용=출자총액제한 제도를 면제해 주는 기준이 달라진다. 지금까지는 부채비율이 100% 미만이 되면 자동 제외됐으나 앞으로는 부채비율이 아무리 낮아도 출자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대신 ▶내부감시 시스템을 잘 갖춘 기업 ▶지주회사 형태의 그룹 ▶출자구조가 단순하고 계열사가 적은 그룹 등은 제외된다. 구체적인 기준은 대통령령에서 정하게 된다. 이헌재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달 19일 "대통령령을 정할 때 기업들의 우려가 반영될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3년 후 지배구조 개선 여부를 평가해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를 검토할 계획이다.

금융.보험 의결권 행사 한도는 내년부터 3년간 매년 5%포인트씩 낮아져 2008년 4월부터 15%로 제한된다. 자산규모 2조원 이상 그룹 산하에 있는 보험사나 카드사는 그룹 내 다른 계열사 지분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최대 15%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지난 2월 소멸됐던 공정위의 계좌추적권도 부활한다.

◆ 재계 반응=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기업 경영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데 정부와 여당이 재계의 고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장 타격이 큰 곳은 삼성그룹이다. 금융.보험사 의결권이 15%로 축소되면 삼성그룹은 자신들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17.8%)의 2.8%를 쓸 수 없게 된다. 삼성전자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 지분율은 63.8%에 달한다. 또 삼성그룹은 부채비율이 100% 미만이어서 지난 7월 출자총액제한 대상에서 제외됐으나 내년 4월부터 다시 규제를 받게 됐다.

반면 LG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 출자 규제를 하지 않는다는 규정에 따라 출자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계열사가 적거나 지배구조가 좋다고 평가되는 현대중공업.한진.금호.동부 등도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거래법이 시행되면 출자 규제를 받는 18개 그룹 중 절반가량이 출자 규제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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