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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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건강식으로 콩과 관련한 음식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콩은 매우 높은 영양가를 지닌 식물이다. 이같은 훌륭한 식품의 원산지가 옛 고구려 땅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장맛을 내기 위해 담은 메주도 고구려에서 처음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콩을 재배한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함경북도 회령의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콩이 출토됐다. 콩은 청동기시대 이래로 우리 민족의 중요한 곡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 쌀이나 보리에 비해 중요도가 떨어진 듯하다.

이익의 『성호사설』에 보면 콩이 오곡에 속하나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을 살리는 데 콩의 힘이 가장 크다고 했다. 가난한 백성이 목숨을 연명하는 데는 콩뿐이라고 했다. 민간에서 콩나물·두부·콩나물국·콩나물 비빔밥·콩밥·콩국수 등 콩이 들어가는 음식문화가 발달한 까닭이기도 하다.

콩은 단순히 좋은 곡식에 그치지 않았다. 잡귀를 쫓는 능력, 벽사(?邪)의 기능이 탁월한 것으로 중시됐다. 신부의 가마가 시댁에 처음 들어올 때 콩과 팥을 가마에 뿌린다. 가마에 붙어온 잡귀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무속(巫俗)에서 콩은 군웅신(軍雄神)을 상징한다. 내림굿을 할 때 강림한 신이 누구인가를 확인하는 절차가 있는데, 이때 상에 올려놓은 여러 곡물 중 콩은 군웅신을 뜻한다. 군웅신은 장군이기에 잡귀를 쫓아내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콩 자체도 잡귀를 쫓아낼 수 있다고 믿어왔다.

콩을 볶아서 쥐를 쫓는 풍속도 있다. 쥐는 곡식을 축내는 동물. 조상들은 쥐를 주술적으로 몰아내는 풍속을 만들었다. 정월 첫 쥐날(上子日)에 콩을 볶으면서 "쥐주둥이 그을리자"고 외친다. 콩을 볶을 때 튀는 소리에 놀라 쥐가 달아나고, 또 뜨거워진 콩을 쥐가 못먹기 때문에 피해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같은 신비한 힘을 믿다 보니 콩을 물에 불려서 점을 치는 풍속도 생겼다. 농촌에서는 섣달 그믐날 12개의 구멍을 파서 콩을 넣은 수숫대를 우물에 넣은 후 설날에 꺼내 본다. 가장 많이 불은 콩이 있는 달에 비가 많이 온다고 한다. 같은 방법으로 각 집의 호주를 표시하여 콩을 넣고 물에 불려서 가장 많은 수확을 거둘 집을 점치는 예도 있다. 콩이 물을 잘 흡수하는 이치를 이용한 농점(農占)이라고 하겠다.

콩은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고도 믿어졌다. 아기장수 설화에서 아기장수가 죽으면서 콩과 팥을 같이 넣어달라고 하였다. 이때 콩은 병사, 팥은 말을 상징한다. 콩이 병사로 변한다는 믿음은 민중의 주된 식량이었다는 사실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같은 콩에 대한 신뢰와 믿음의 원천은 무엇보다 그 풍부한 영양, 고기가 부족하던 시절 단백질 공급을 대신했던 힘에서 나온 듯하다. 그런데 고기를 쉽게 먹을 수 있는 요즘 콩은 건강식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콩의 중요성을 오래 전부터 알았던 조상들의 지혜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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