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히트상품 이젠 함께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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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고농축 세제가 1987년 일본에서 히트한 뒤 한국에 상륙해 히트하기까지는 5년 걸렸다. 그러나 2000년 한국에서 히트한 킥보드는 일본에 비해 2년 늦었다. 급기야 지난해에는 디지털 카메라와 DVD 플레이어가 한·일 두 나라에서 동시에 히트상품에 올랐다.

한국과 일본의 히트상품이 갈수록 닮은꼴이 돼가고 있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히트한 상품이 한국 시장에서 인기를 끌려면 3~5년 걸리던 것이 최근에는 시차가 1~2년 내로 줄었거나 거의 없어지는 추세다. 이는 삼성경제연구소(www.seri.org)가 92년부터 지난해까지 한·일 양국에서 히트한 상품을 비교 분석해 14일 내놓은 '한·일 히트상품과 소비 트렌드'란 보고서에서 밝혀졌다.

◇비슷해지는 한·일 히트상품=보고서에 따르면 90년대 초까지 한국 기업은 일본에서 히트한 제품을 모방하는 데 주력했다. 제품 자체는 물론 광고·홍보 기법까지 일본의 방식과 이미지를 모방했다.

한국은 삼성경제연구소와 주요 일간지, 일본은 닛케이(日經)비즈니스·주간 다이아몬드의 히트상품을 분석한 내용이다.

고농축 세제와 '미에로 화이바' 같은 식이섬유음료는 일본에서 히트한 뒤 5년 이상 지나서야 국내에 소개됐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두 나라간 히트 시차가 줄기 시작해 일본에서 히트한 정수기·킥보드가 한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모으는 데는 2년도 안걸렸다.

디지털 서비스와 관련 콘텐츠는 한국에서 히트한 시기가 오히려 일본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전용선의 하나인 비대칭 디지털 가입자회선(ADSL)은 한국의 히트 시기가 일본보다 2년 앞섰다. 휴대폰은 한국이 일본보다 1년 늦게 붐이 일었지만 가입자수에서 이동통신이 유선전화를 추월한 시기는 한국(99년)이 일본보다 1년 앞섰다.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DVD 플레이어 등이 한·일 양국에서 동시에 히트상품으로 선정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영화 등 문화상품이 두 나라에서 히트상품으로 자주 선정되는 것도 이채롭다.

그러나 소니의 강아지로봇처럼 첨단기술을 활용해 소비자의 정서를 자극하는 휴먼터치형 히트상품은 일본이 여전히 한수 위다. 하와이 가족여행(95년)·정원 가꾸기(98년) 등 히트상품의 종류도 일본이 훨씬 다양한 것으로 조사됐다.

◇새로운 유행과 국내기업 대응=영상물·음반·도서 등 문화상품과 서비스·인물 등 무형물을 포괄하는 소프트상품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중적 제품보다 세분화된 소비층을 타깃으로 삼은 아바타·즉석밥 같은 상품들이 히트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같은 추세에 맞춰 국내 기업들은 휴대폰 등 국내 히트상품을 국제화하고 히트상품을 개발하는 다기능팀을 구성해 지원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또 국내외 히트상품의 동향을 수시로 파악하고 고객부서의 권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순화 연구원은 "한·일 히트상품이 동질화하는 것은 세계 경제가 그만큼 단일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해석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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