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경쟁력이다] 봉화 '춘양목 송이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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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전자상거래를 시작한지 1년만에 2억9000여만원의 매출을 올린 경북 봉화군 ‘춘양목 송이마을’운영위원들이 주문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조문규 기자

겨울철 날씨가 워낙 추워 '한국의 시베리아'로 불리는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벽.도심리 일대. 강원도와 경계에 있고 해발 1000m가 넘는 문수산.옥석산.구룡산 등이 삼면에 병풍처럼 둘러 서 있는 오지 중의 오지다.

적송으로도 불리며 조선시대 궁궐 건축용 자재로 쓰였던 춘양목 자생지로 유명한 이곳 산골마을이 사이버 세상에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고 있다. '춘양목 송이마을'이란 인터넷 쇼핑몰(http://cs.invil.org)이 개설 1년 만에 두각을 나타내면서 농산물 판매의 새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농민들은 "도시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판매전략 때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 인터넷을 통한 농산물 판매=춘양면 서벽.도심리 6개 마을 농민들은 2003년 8월 행정자치부 지원으로 홈페이지'송이마을'을 열었다. 행자부의 '정보화 마을'로 선정된 때문이다. 이 사업으로 주민 120명 모두 컴퓨터를 지급받고 12대의 컴퓨터 등이 있는 정보화센터를 갖게 됐다.

농민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해 9월 1일부터 올 8월까지 1년간 도시민과의 직거래로 사과.송이.표고버섯.호두 등 2억4500여만원어치(60여농가 참여)의 농산물을 팔았다. 2002년 홈페이지가 없던 시절 연간 400만원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무려 60배 이상이나 매출이 늘었다.

전국 191개 정보화 마을의 마케팅센터 오승훈 팀장은 "봉화 송이마을은 농민 조직, 상품 구성 등 기반조성이 잘돼 있어 매출이 전국 5위 안에 든다"고 말했다.

지난 추석특판(9월 1~20일) 때는 사과.송이 6000만원어치를 팔았다. 올 겨울에는 저장사과(부사)를 지난해 600상자보다 세배 이상 늘어난 2000상자(1상자 10㎏)를 팔 계획이다. 내년 8월까지 1년간 매출 3억원은 무난할 것으로 보고 있다.

농산물 판매증가는 활발한 사이트 운영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다. 지금까지 게시판에 오른 글이 4100여건에 이르며, 누적 조회 수는 28만회나 된다.

행자부는 이 같은 실적을 평가, 지난 6월 '성공신화 만들기'사례(전자상거래부문)로 선정해 2000만원을 별도 지원했다. 소문이 나면서 전국 20여개 마을 주민 400여명이 봉화 송이마을 견학을 다녀가기도 했다.

◆ 철저한 농산물 품질관리=인터넷을 통해 판매가 결정된 농산물은 6명의 전자상거래팀과 운영위원이 저장고 등에서 공동작업으로 상품을 선별, 포장한다. 이 과정에 농산물 주인은 절대 개입할 수 없다.

김대현(46) 전자상거래팀장은 "주인이 선별에 개입하면 크기가 작거나 하품을 섞어 팔 수 있지 않겠느냐"며 "그럴 경우 이미 확보한 고객마저 놓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주인은 판매액의 5%를 수수료로 내고 판매대금만 받는 형식이다.

또 독자적인 상표와 캐릭터.포장재를 개발해 사용한다. 외부로 유출돼 사용될 경우 농산물의 이미지가 떨어질 수 있다며 포장재는 엄격히 관리한다.

농산물은 생산자를 알 수 없게 반드시 운영위원회 이름으로 공동판매하는 것도 독특하다. 주문도 정보화센터 전화(054-674-1030)로만 받는다. 개인이 팔고 싶은 농산물을 사이트에 올려 팔 경우 품질관리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주문받은 농산물은 24시간 이내 주문자의 집으로 배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운영위원장 이현기(53)씨는 "이 같은 품질관리 덕분에 지금까지 단 한 건의 반품사례도 없었으며, 고객의 90%가 재구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 고객감동 판매전략=설날부터 정월보름 사이 주문자에게는 복주머니에 호두 5개를 넣어 보낸다. 평상시에는 솔잎과 솔잎차를 만드는 쪽지를 동봉하거나, 밥에 섞어 먹을 수 있게 속청(약콩)을 한 줌씩 보낸다.

다양한 이벤트로 고객관리에도 만전을 기한다. 지난해와 올 추석 때는 게시판에 글을 올린 10명씩을 추첨, 자연산 송이 500g 또는 1㎏씩 선물했다. 농산물 구입고객과 2000여명의 출향 인사에게는 전화와 e-메일로 지역소식 등을 전한다. 단골 확보를 위한 전략이다.

컴퓨터를 독학으로 배워 사이트 관리를 맡고 있는 신숙자(33.주부)씨는 상품주문뿐만 아니라 수시로 지역소식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글과 함께 게시판에 올린다. 신씨는 "고향소식에 출향 인사 등이 많은 글을 남기면서 인기 사이트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외부인사 6명을 홍보위원으로 위촉, 사이트 홍보에도 열을 올린다. 덕분에 1년 만에 외지인 400명을 사이트 회원으로, 1100명의 단골고객을 거뜬히 확보했다.

◆ 운영위원회의 민주적 운영=홈페이지 관리와 농산물 판매는 이장 6명을 포함한 12명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책임진다. 40~50대인 운영위원들은 민주적 회의로 안건을 심의.결정한다.

운영위원들은 특히 컴퓨터를 지급받아 기본회원(120명)이 된 다른 농민의 농산물을 먼저 팔아준 뒤 물량이 달리면 자신들의 농산물을 판다. 운영위원 자신의 농산물을 먼저 팔면서 사이트를 '사유화'하고 있는 다른 정보화 마을의 실패 사례를 귀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봉화=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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