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국가과제 <4> 아이 保育 정부가 나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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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회사원 김수진(31·서울 종로구 동숭동)씨는 18개월 된 아들을 다시 부산 친정 어머니에게 내려보내기로 했다. 3개월간 놀이방에 다니는 사이에 몸이 홀쭉해진 게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출산 후 10개월 동안은 부산의 친정 어머니가 서울 이모집에 기거하면서 아이를 돌봤다. 그후 시어머니에게 맡겼다가 놀이방으로 옮겼으나 결국 함께 살기를 포기한 것이다.
전현미(32·서울 강서구 방화동)씨는 둘째아이를 낳고 직장을 포기했다. 아이 둘을 남에게 맡길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하는 여성'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육아전쟁이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아이 낳기 겁난다, 누가 키우나"하는 정서가 젊은 부부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중앙일보 여론조사팀이 최근 7세 이하 자녀를 둔, 일하는 엄마 4백87명을 조사한 결과 '보육(탁아)문제로 퇴직·폐업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답변이 53%로 나타났다.
지난해 나온 컨설팅사 매킨지의 '우먼 코리아'보고서를 보자. "한국이 2010년 세계 10위의 국가경쟁력을 갖고자 한다면 여성 고급인력의 활용률을 70~80%까지 올려야 한다"며 보육제도의 질과 양 혁신이 열쇠라고 강조했다.
우수한 보육시설을 갖춘 직장에 좋은 여성인력이 몰린다는 사실이 보육과 향후 국가경쟁력의 밀접한 관계를 짐작케 해준다.
또한 육아걱정 때문에 출산율(2000년 가임 여성당 1.47명)이 낮아져 갈수록 생산성 인구가 줄어드는 것도 큰 문제다.
게다가 엄마도 벌어야 사는 저소득층에겐 보육이 생존의 문제다.
여성단체연합 남인순 사무총장은 "여성의 50% 이상이 경제활동을 하고 있어 엄마 중 절반이 보육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며 "나아가 높아진 이혼율로 편부모 가정이 급증해 이제 국가와 사회가 보육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의 보육시스템은 지나치게 민간 의존적이다. 보육시설 중 공공부문(정부 지원을 받는 국·공립 및 법인 소속)은 16.9%(아동 분담률로는 36.7%)에 그친다. 일본의 공공시설 비중은 60%다.
보육비용의 국가 재정 분담률도 우리는 평균 27%(나머지는 부모 몫)인 반면 일본은 53.4%, 프랑스는 75%다.
민간시설에 대한 관리감독이 거의 없어 질이 크게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한국여성개발원 유희정 연구위원은 "1992년 4천5백여개였던 보육시설이 2만개에 이를 정도로 급속히 늘었지만 열악한 민간시설의 난립으로 엄마들이 믿고 아이들을 맡길 곳을 찾기 어렵다"며 "정부가 민간시설에 대한 관리·지원·평가를 시행하는 공(公)보육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서문희 부연구위원은 "보육에 대한 영국의 그린 페이퍼(1998년), 일본의 신 에인절 플랜(2000년)처럼 국가전략사업화하는 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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