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론 케이먼군도등 이용 4년간 세금 한푼 안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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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분식회계 및 부시정권과의 유착의혹을 받고 있는 엔론사가 카리브해 일대의 이른바 조세회피지역을 이용해 최근 몇년간 미 정부에 세금을 한푼도 안낸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들 지역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근 뉴욕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엔론사는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이들 조세회피지역의 실체가 불분명한 공동사업자에게 이윤을 돌리는 수법으로 97년(1천7백만달러 납부)을 제외하곤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엔론사는 이 과정에서 케이맨 군도에 6백92곳의 사업 파트너를 두었으며, 터크스 및 카이코스 제도 1백19곳, 모리셔스 43곳(인도양 소재), 버뮤다 8곳 등에 공동사업체를 만들어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도 29일 케이맨 군도 관련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자그만한 영국령 어촌마을이 40년도 채 안돼 세계 5위의 금융도시로 성장한 배경을 다루고 있다.

1960년대 중반 케이맨 군도는 파격적으로 낮은 세율과 손쉬운 기업설립을 내세워 국제자본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은 4만7천개의 해외 사업체(대부분이 가공의 페이퍼 컴퍼니)와 4백여개의 국제은행들이 활발한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

카리브해의 여러 섬나라 중에서 가장 잘사는 이곳은 2000년 6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의해 35개 블랙리스트 국가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기도 했다.

마약 등 불법행위와 관련된 '검은 돈'이 이곳에서 많이 세탁되고 있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지난해 관련법을 개정키로 약속하고 간신히 블랙리스트에서 빠졌다.

케이맨 군도 관리들은 이곳에서의 금융거래는 절세를 위한 합법적인 수단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많이 이뤄지는 항공기 계약의 경우 항공기 제작업자나 보험업자들이 다른 나라의 법과 제도를 불신, 이곳에서 계약서 작성을 희망하는 것처럼 순기능도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선진국들의 시각은 다르다.지나치게 낮은 세율로 국제자본의 탈세를 조장하고, 검은 돈들의 세탁창구로 이용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 상원이 의뢰해 실시한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은 조세피난처를 이용해 한해 세금을 약 7백억달러나 빼돌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이들 조세피난처의 활동을 규제하려는 국제적 움직임이 OECD를 중심으로 있어 왔다. OECD는 2005년까지 모든 조세관련 정보를 공개할 것을 이들 나라에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친기업 성향의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의 자세가 상당히 누그러진 것이 변수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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