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정치논리와 기업이 살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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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구축(驅逐)하고 있다'는, 기업들의 생사가 걸린 하소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 무엇이 정치논리의 뿌리며 경제논리는 무엇인지를 밝히려는 의식화된 용기와 지식이 싹트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하자. 한국에서 정치논리란 것은 사회(민주)주의와 국가(공동체)주의, 이 두 이데올로기다. 전세계적으로 경제논리라 함은 자유주의다.

*** 여전한 봉건적 국가주의

사회주의는 부(富)의 결과적 평등을 원칙으로 삼는다. 이런 평등을 보증하기 위해 정치를 노동자 독재 권력 체제로 만들어야 한다고 마르크스주의는 주장한다.

그러나 소련의 경우 실제로 권력을 잡은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레닌이 노동자를 대신하는 전위조직이라고 부른 소수의 공산당 엘리트였다. 평등이란 핑계 아래 희생된 것에는 자유만이 아니라 평등도 포함됐던 것이다.

부를 창조하는 것은, 그리고 문화적 모든 가치를 창조하는 것도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다. 자유로운 의지가 있고 이런 자유로운 의지들 사이에 치열한 경쟁이 보장돼야 가치가 왕성하게 창발(創發)된다. 마중지봉(麻中之蓬)이란 말은 쑥도 삼밭에서는 곧게 자란다는 뜻이다. 잡목 숲과 많은 스님이 모여 수도하는 큰 절을 함께 일컫는 총림(叢林)이란 말도 같은 뜻이다.

삼밭과 총림에서 삼.쑥.잡목은 자신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햇볕을 더 받으려고 경쟁하다 보니 곧고 크게 자란다. 스님들은 진리를 향해 경쟁하다 보니 그 가운데서 대덕(大德)들이 출현한다. 자유시장도 마찬가지다. 손님을 하나라도 더 끌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싸고 좋은 물건과 서비스를 만들려고 경쟁하다 보니 싸고 좋은 물건이 넘쳐나 나라 전체가 잘 살게 된다.

시인 서정주는 가난이란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고 노래했지만, 자유주의는 자연스런 현상으로서의 자유와 경쟁에 대한 한낱 소박한 신뢰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자유주의는 작위(作爲)가 아니라 부작위(不作爲)를 원칙으로 삼는 이데올로기다. 동양 사상으로 치면 유교보다는 노장(老莊)이나 불도(佛道) 또는 기(氣)사상과 가깝다 할 것이다. 자유주의자는 혁명에 성공하면 할 일이 없어지고 사회주의자는 혁명에 성공하면 할 일이 너무나 많아진다는 말은 핵심을 찌른 말이다.

동북아시아의 국가주의는 오랫동안 농업 경제와 농업 문화를 내부적으로 질서짓고 외부의 침략에서 방어하는 데 기여해 왔다.

전설 속의 성군인 요순우탕(堯舜禹湯)을 내걸고 백성에게는 암폭(暗暴)한 현실의 군주와 관료에게 충성을 다하라는 이데올로기가 동북아시아적 국가주의다. 국가주의 체제 속의 백성은 사뮈엘 베케트의 연극 속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부랑자들처럼 성군의 출현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현대 산업사회적,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식 사회적 성군은 국가주의나 사회주의에서는 더욱 나타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고도는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없어진 것이다. 격양가(擊壤歌) 속의 찬양 대상처럼 '왕의 공덕이란 것이 무언지, 왕이 누군지' 평민들이 느끼지도 못하기에 이를 만큼 위대한 성군이 만일 나타난다면 그것은 반드시 자유주의 세상에서일 것이다.

*** 자유경쟁 속에 참된 발전

소련식 사회주의를 리처드 파이프스는 '붉은 칠을 한 제정(帝政)러시아'라고 불렀다. 이와 같이 국가주의와 사회주의는 역사의 경험으로 보건대 썩 잘 맞게 야합한다. 속으로는 창조력의 결핍으로 불가피하게 쇠퇴와 부패의 내리막 길을 가면서도 겉으로는 평등, 배타적 민족주의, 통일 등 자극적이고 투쟁적 슬로건을 수시로 갈아가며 내건다.

그리고 모든 부족과 미흡은 자유 기업과 외국의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실은 평등과 통일도 모든 것을 내 탓으로(간혹은 운명탓으로) 돌리는 자유주의만이 이룩할 수 있다.

경제논리를 신자유주의라고 매도하고 있는 정치논리의 뿌리는 '분홍 칠을 한 조선왕조'다. 기업이 생존하고 번영하는 유일한 길은 자유주의 환경을 스스로 심화 확산하는 것이다. 지구의 역사에서 생명에 필요한 산소를 만든 것이 생태계 자신이었듯이 말이다.

기업이 이 일을 해내려면 지금부터라도 자유주의 지식과 사상에서 깊이를 갖춘 사람만 사원으로 뽑으면 된다. 이렇게 되면 각급 학교가 인문학에 뿌리를 둔 자유주의를 경쟁적으로 교육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姜偉錫(월간 에머지새천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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