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3사 디지털 전환 재원 자체충당 가능한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KBS.MBC.SBS 지상파 3사가 디지털 방송 전환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을 놓고 이들 3사와 학계.방송계.시민단체가 첨예하게 맞서 있다. 방송 3사는 2010년까지 약 2조6백억원에 이르는 재원을 마련하려면 광고요금을 올리고 정부 등에서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계 등에선 이들 3사가 많은 광고수입으로 상당한 순이익을 내고 있어 자체적으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또 올해 TV 광고료가 9.8% 올라 방송사들의 수입이 더욱 늘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SBS의 경우 코스닥시장에서의 유상증자를 통해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권호영(權晧寧)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은 "2000년 방송 3사가 남긴 순이익은 총 2천4백2억원으로 디지털 전환에 소요되는 연평균 비용인 1천8백4억원을 초과했다.

지난해 광고수입도 크게 줄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돼 재원 마련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KBS 수신료(시청료)나 광고 외의 수입을 따지지 않는 상황에서 순이익이 29% 줄어든다 해도 이들 3사는 디지털 전환에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 방송계 인사는 "공공 자산인 지상파를 이용하는 방송 3사가 이익을 디지털 전환 등 적절한 곳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3사가 영국.일본 등 외국 방송사나 다른 산업에 비해 종업원 임금이 높은데도 인건비를 올리거나, 당장의 수익이 눈에 보이는 케이블TV.위성방송에 진출하는 등 사업다각화에만 신경을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재원이 얼마가 될 것인지에 대한 통계도 부정확하다.

정보통신부 관계자는 "1998년 방송 3사가 추정한 디지털 전환 비용은 약 2조7천억원이었으나 이중 제작비를 줄여 약 2조6백억원을 전환 비용으로 잡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송위원회가 2000년 말 발간한 '디지털방송 추진위원회 종합 보고서'에 실린 내용은 정부가 발표한 것과 다르다.

MBC의 경우 6천2백37억원으로 정부가 발표한 4천6백95억원과는 큰 차이가 나며, KBS의 송신시설을 이용하는 EBS는 99년도 정부가 발표한 통계에선 빠졌다가 방송위 보고서에선 제작시설 등에 3백55억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돼 있다.

또 방송 3사의 관계자들은 "디지털 전환에 따른 프로그램 제작비가 지금보다 적게는 20%, 많게는 1백% 늘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시민단체의 시각은 싸늘한 편이다. 최민희(崔敏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총장은 "디지털 전환을 주도하는 정부나 수입확대에 신경쓰는 방송사가 방송을 문화산업으로 보지 않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방송사가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도입하려는 '총량제'와 중간광고는 시청률 경쟁을 부추겨 방송사가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치중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송 3사의 입장은 각각 다르다. KBS 관계자는 "광고사정이 좋아 이익이 많이 나도 우수한 제작인력의 확보, 노후장비 교체, 임금인상 등에 돈을 안 쓸 수 없다. 디지털 전환에 드는 약 1조원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만큼 정부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MBC 관계자는 "광고수입을 빼면 수익구조가 없다. 특히 방송문화진흥기금 등 공적자금으로 나가는 돈이 KBS.SBS보다 많고 케이블TV.위성방송 진출도 자체 프로그램을 활용한다는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밝혔다.

SBS측은 "디지털 전환은 방송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지 새 수익모델이 아니어서 유상증자를 생각하기 어렵다.수익자 부담 원칙상 디지털 전환의 수혜자인 가전업계가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신방과 교수는 "공익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줄 것을 기대하고 공영방송에 시청료 등을 내는 시청자들은 방송사의 위성 진출 등 '조직 늘리기'에 동의한 적이 없다. SBS의 유상증자는 디지털 전환에 따른 비용 절감으로 순이익을 챙길 주주가 투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반박했다.

김기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