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묻는다] 1. 높은 뜻 숭의교회 김동호 목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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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사회가 만신창이다. 어디 하나 제대로 된 곳이 없다. 청소년 열명 중 아홉이 우리 사회가 부패했다고 하고, '이 땅을 떠나고 싶다'는 사람 역시 부지기수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절망뿐인가. 그렇지 않다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추슬러나갈 것인가. 우리는 그 희망의 불씨를 종교에서 찾는다. 이 땅에는 절대자의 말씀을 묵묵히 실천하는 성직자들이 있다. 그들의 목소리로 새해를 시작한다.

서울 남산 아랫자락에 있는 '높은 뜻 숭의교회'(이하 숭의교회)의 김동호(金東昊.51)목사. 나이 오십이면 지천명(知天命)이라는 말대로 그는 하늘의 뜻을 알아버린 것일까. 지난해 그의 행보는 개신교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신도수 6천명이 넘는 대형교회 중 하나인 서울 이문동 동안교회 담임으로 있으면서 예결산 내역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건강한 교회를 위해서는 재정 투명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대형교회로는 처음이었다.

교회의 부자세습 문제가 불거지자 이번에는 11년간 정이 든 동안교회를 떠나 개척교회를 세우겠다고 공표했다. 교회가 목사 한 사람에 의존해 성장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기왕 새로 시작하는 김에 예배당 없는 교회를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나이 오십에.

그렇게 세워진 숭의교회의 첫 예배는 지난해 10월 7일 숭의여대 소강당에서 99명의 신자들과 함께 열렸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난 지금, 교인수는 1천1백명으로 불어났다. 9일 오후 만난 김목사는 무척 환한 표정이었다. 신입사원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미소가 그에게 있었다.

-수천명 앞에서 설교하다가 1백명도 안되는 신도 앞에 서니 어떠셨나요.

"아주 좋았어요. 큰 교회에서는 교인들이 관중같았는데, 그 99명이 수천명보다 더 커보였어요. 큰 교회에서는 교인수가 수백명 단위로 늘고 줄고 하는데, 여기서는 한명이 오는 게 새로운 거예요. 진짜 목사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예배는 어디서 봅니까.

"지금은 체육관에서 하고있는데 숭의여대 강당을 빌리기로 하고 수리하고 있어요. 교회가 학교시설을 공유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학교는 평일에, 교회는 주일이나 야간에 쓰면 낭비도 없고 아무 문제 없습니다. 주차장 문제도 쉽게 해결되고 좋아요."

전문 목사제를 도입해 자신은 설교에만 전념하겠다는 등 새 계획을 설명하던 김목사의 들뜬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그는 요즘 우리 사회의 도덕성이 붕괴되면서 가장 중요한 가정이 파괴되고 있는 점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지금까지 '잘살아 보자'고만 했지 '잘사는 게 뭔가'에 대한 고민은 너무 없었어요. 그런 가운데 믿음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졌습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그만'이라며 목적을 위해 모든 수단을 용인하다보니 사회의 정직성도 실종된 것입니다. 저는 '기본기'가 모자라도 경제성장이 가능한 한계가 국민소득 1만달러까지라고 봐요. 이제 거기서 한 단계 더 올라가려고 하는데 기본이 받쳐주질 못하니까 정치고,사회고,가정이고 더 이상 감당을 못하는 것이지요."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육을 해야죠. '정직하자''다른 사람을 위하자'같은 기본부터 다시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특히 청소년 교육 투자를 많이 해야돼요. 인터넷 같은 것도 무조건 못하게 하지말고 교육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 저는 예배당을 크게 짓는 것보다 이런 것이 더 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의 중요성을 정확히 지적하면 돈은 모이게 돼 있습니다. 좋은 부자들도 많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이 사회가 불공평하다고 합니다.

"생명과 사랑의 원리 중 중요한 것이 '흐름'입니다. 흐름에 필요한 것은 불공평과 불평등입니다. 높은 곳이 있고 낮은 곳이 있어야 물이 흐르고, 강한 곳이 있고 약한 곳이 있어야 바람이 붑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흐름의 원칙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강한 곳에서 약한 곳으로 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부자는 가난한 자를 돕고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이 원칙을 바꿔놓았습니다. 모든 것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역류하고 있습니다. 강하고 부한 곳으로만 몰리고 더 이상 흐르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약한 자는 계속 절망하고 부하고 강한 자는 계속 타락하고 있습니다. 결국 모두 파멸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동안 한국 교회는 너무 교회만을 위해 살아왔어요. 그러다보니 교회일만 열심히 하고 사회에는 적응하지 못하는 '이상한 종교인'도 생겼지요. 건실한 사회인, 특히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사는 지도자를 양성하는 데 교회의 역량을 집중해야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을 찍는데 예수님의 웃는 그림이 담긴 액자가 눈에 띄었다.새해에는 그런 웃음을 우리 이웃에게서도 보고 싶다.

글.사진=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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