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방에서 밥 지어 먹던 20년 전 월드컵 취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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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호 16면

이탈리아월드컵에서 마라도나(왼쪽)를 만난 필자.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였으니까 벌써 20년 전 일이다. 들뜬 분위기는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86년 이후 두 번 연속 월드컵에 진출한 데다 예선을 무패로 통과한 한국 축구의 자신감도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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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스포츠서울의 축구기자였던 필자는 두툼한 파일북과 취재노트, A4용지, 수성펜 등 취재에 필요한 것이 들어 있는 배낭을 메고 양손에는 여행용 전기 취사도구와 반찬, 쌀, 라면, 옷가지가 들어 있는 중형 스포츠백을 들고 이탈리아를 누비고 다녔다.
아침 식사는 숙박비에 포함된 터라 호텔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먹고 점심은 프레스센터에서 해결했다. 문제는 저녁이었다. 한국 기자들은 대부분 호텔 방 안에서 밥을 지어 먹었다. 김치와 깻잎, 마늘장아찌 냄새가 호텔 복도를 따라 아침까지 흘러 다녔다. 며칠 뒤 호텔 측에서 공식 항의가 있었다. 창문을 활짝 열어 놓는 것으로 눈총을 비켜 갔다.

그래도 전화가 유일한 통신 수단이었던 86년 멕시코 월드컵에 비해 팩시밀리가 있어 잠을 설치지 않고 기사 송고를 할 수 있어 좋았다. 통신비가 만만치 않아 여백에도 빽빽하게 가십 기사로 채워 넣었다. 로마 입성 사흘 만이자 벨기에와 첫 경기를 불과 사흘 앞둔 6월 9일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에서 선수단을 위한 만찬을 베풀었다. 단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39명의 선수단(선수 24명, 임원 15명)과 35명의 한국 취재기자가 참석했다. 선수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헤드테이블의 웃음 섞인 대화가 끝날 때까지 지루하게 자리를 지켜야 했다.

응원단은 현지 교민과 유학생, 인근 나라에서 온 열성 교민이 대부분이었다. 원정 응원단이래야 경제적 여유가 있는 한국OB축구회 회원과 경기인 출신 가족이 전부였다. TV 화면에 비친 황보관의 대포알 같은 프리킥이 스페인 골문에 꽂힐 때 태극기 휘날리며 스탠드를 질주하던 이가 바로 경남 FC 조광래 감독의 형이었다. 그들이 태극기를 들고 있지 않았다면 한국 응원단이라는 것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숫자였다.

한국 선수단 취재는 사람 좋아하는 이회택 감독 덕분에 비교적 자유로웠다. 선수단 숙소 출입에 큰 제약이 없었고 연출 촬영도 가능했다. 그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모 방송국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선수들을 수영장으로 모이게 해 화면에 가득 담았다. 이 장면은 스페인에 1-3으로 패한 뒤 예선 탈락이 확정되자 훈련은 외면한 채 수영을 즐기고 있다는 비난 기사 현장으로 둔갑, 선수단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본격적인 월드컵 취재는 한국 대표팀이 우루과이에 패해 3패를 당하고 이탈리아를 떠난 뒤에야 시작됐다. 아르헨티나의 최고 스타 마라도나, 무명의 득점왕 이탈리아 스킬라치 취재도 그때야 가능했다. 16강전부터 결승까지 진짜 월드컵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서 만난 축구인은 김호·차범근·조광래 정도였다. 한국 선수단 39명 중에는 연락관을 맡았던 독일 교민 윤성규씨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월드컵에 출전조차 못한 일본·중국의 많은 축구 관계자는 무리를 지어 월드컵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이를 부럽게 바라보는 심정은 착잡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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