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Leadership] 인터뷰 - 빌리 빈 애슬레틱스 단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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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빈 애슬레틱스 단장

미국 프로야구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빌리 빈 단장은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새로 쓴 인물이다. 다른 전문가들이 더 잘 치는 선수와 더 빨리 던지는 선수를 선호할 때 그는 공을 더 잘 골라내는 타자와 유인구를 던져 타자를 더 잘 속이는 투수에 주목했다. 철저한 통계가 뒷받침됐다. 결과는? 애슬레틱스는 뉴욕 양키스의 3분의 1에 불과한 연봉 수준으로 꾸준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명문 팀이 됐다. 애슬레틱스의 콜리시엄 구장 내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저평가된 선수를 찾아내 가치를 최고로 끌어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본이 많은 양키스 등과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선수 25명에게 애슬레틱스가 지급할 수 있는 연봉이 4000만 달러였다. 다른 명문 구단이 1억2600만 달러를 준비해 놓고 따로 1억 달러의 비상금을 비축해 놓은 것과 비교하면 한숨이 나오는 수준이다. 우리 나름의 생존 전략이 필요했다. 다른 구단이 데이터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었던 게 도움이 됐다. 우리가 최초로 도입한 데이터 시스템이 지금은 야구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에 활용되고 있다.”

그가 만들어 낸 OPS(출루율과 장타율의 합산)는 오늘날 모든 구단이 사용하는 중요한 통계 수치가 됐다. 그래도 데이터 외에 선수를 고르는 다른 기준이 있을 법했다.

“나도 고교 3학년 때 비싼 몸값을 받고 뉴욕 메츠에 입단했지만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철저히 나와 다른 스타일의 선수를 찾았다. 몸값이 비싼 체격 좋고 발 빠른 선수보다 뚱뚱하고 느리더라도 선구안이 좋아 살아 나가는 출루율이 높은 선수를 뽑았다.”

저평가된 선수를 찾아 제값을 받아낸다는 건 주식 투자의 ABC 아닌가. 경영학을 공부했는지 물었다.

“아니다. 경영은 성공한 사업가의 책을 읽으며 독학으로 공부했다. 메이저리그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성공한 사업가를 보며 가이드라인을 찾으려 노력했다. 오랫동안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의 경영전략을 신문에서 읽었다. 주식을 사고파는 데 있어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그를 모델로 ‘사업의 정수’를 배우려 노력했다.”

사업의 대표적인 사례가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몸값이 최고인 투수 배리 지토다. 애슬레틱스가 지토에게 준 연봉은 2000년 20만 달러, 2001년 24만 달러, 2002년(지토가 사이영상을 받은 해)엔 50만 달러에 불과했다. 지토는 2007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이적하면서 메이저리그 역대 투수 가운데 가장 많은 돈을 받았다. 지토가 받은 돈은 7년간 1억2600만 달러에 달했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애슬레틱스가 2000년 지토에게 준 연봉의 90배에 달한다. 상응하는 이적료를 애슬레틱스가 챙겼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연봉 46만 달러로 무명에 가까운 애슬레틱스의 좌완 투수 댈러스 브래든은 지난 10일 탬파베이 레이스 팀을 상대로 9이닝 동안 단 한번의 출루도 허용치 않는 퍼펙트 게임(메이저리그 19번째)을 거둬 또 하나의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1980년 고교 3학년 때 뉴욕 메츠 팀에 선택된 유망주였지만 선수로서 큰 활약을 보이진 못했다. 메이저리그에서 6년간 통산 2할1푼9리의 타율과 3개의 홈런만을 기록했을 뿐이다. 그가 진면목을 보인 건 그 이후다. 90년 그는 ‘메이저리그 벤치와 트리플 A팀을 오르내리다’ 스카우터 일을 하고 싶다고 자원한다. 영화배우가 무대장치 담당자가 되겠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선수 시절 성적이 좋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성공한 구단에서 선수로 활동했다. 이 경험이 단장으로서 보는 시각을 넓게 해 줬다.”

그는 98년 취임 이후 팀을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그는 그 공을 전임자에게 돌렸다.

“리더십에 대해 샌디 앨더슨 전임 단장에게 많이 배웠다. 그의 리더십은 ‘기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와 ‘모든 일을 너무 쉽게 확신하지 않는다’였다.”

그 두 가지 리더십은 빈에게 계승되면서 ‘불공정한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과학’이 됐다. 그것은 그의 이야기를 다룬 책 『머니 볼(Money Ball)』의 부제이기도 하다.『머니 볼』은 곧 영화로 나올 예정이다. 브래드 피트가 그의 역할을 맡는다.

“개인적으론 영광이다. 브래드 피트가 영화에서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표현해 줄 것으로 본다. 피트와 지난해와 올 1월 덴빌에 있는 내 집에서 만난 적이 있다. 『머니 볼』도 읽었고 역할에 굉장한 호감이 있는 눈치였다. 영화는 언제나 내용이 책과 다르게 나온다는 게 나쁜 점이지만 내가 만난 피트는 신사였다. 스타지만 평범하고 재미있고 정직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요즘 애슬레틱스의 성적이 예전만큼 좋지는 않다. 현재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2위다. 하지만 그는 걱정하지 않는다.

“현재 우리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젊은 선수로 구성돼 있다. 경험을 충분히 쌓은 내년에는 강한 팀이 될 것으로 본다.”

그는 의외로 축구 팬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그래도 야구가 아니냐는 질문에 정색을 하고 축구 얘기를 시작하더니 얼굴 색이 변할 정도로 축구 얘기를 이어 갔다. 특히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을 좋아한다는 그는 선수들의 이름·스타일 등을 줄줄 꿰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중앙일보 최광민·김판겸 기자 kwang@koreadaily.com

j 칵테일 >> 한국도 몸값 반란

한국에서도 ‘강소(强小) 타자’들이 뜨고 있다. 몸값은 적지만 톡톡히 ‘대들보 노릇’을 하는 선수를 말한다. 강소 타자에게 시선이 쏠리면서 빌리 빈 단장의 저평가 선수 발굴법도 주목받고 있다.

삼성 이영욱은 연봉이 4095만원이지만 삼성의 확실한 1번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18일 기준으로 타율 2할9푼에 출루율 3할9푼5리, 득점 32개(3위)를 기록했다.

롯데의 외야수 손아섭(연봉 4000만원)은 지난해 1할 타자의 수모를 겪었지만 올해는 3할5푼4리로 3위에 올랐다. 최다 안타 부문에서도 2위(58개)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두산에서 방출된 한화의 정원석(3700만원)도 3할 타자로 팀 공격의 선봉에 서 있다.

한국야구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억대 연봉자’는 110명에 이른다. 8개 구단 선수의 23%를 차지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강소 타자의 선전은 돋보인다. 이영욱이 소속된 삼성만 해도 평균 연봉이 1억214만원에 이른다.

1년 몸값이 5억원 이상인 ‘거물’은 8개 구단을 통틀어 8명이다. 억대 연봉은 1985년 삼미의 장명부(1억484만원)를 시작으로 꾸준히 늘어 지난해 처음 세 자릿수를 돌파했다.

2004년 국내 최초로 대학원에 야구학과를 개설한 호서대 박정근(체육학) 교수는 “사실 많은 선수의 실력이 비슷한데 본인의 체력·심리·의지와 함께 감독의 ‘용병술’이 더해져 빛을 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팀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빌리 빈 단장과 같은 과학적이고 창의적 용병술을 개발하는 데 더 힘써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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