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외교부 구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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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혁신 조치가 지난 2일 확정된 이후 자신의 장래를 걱정하는 외무관리가 제법 많아졌다. 혁신의 골자는 조직의 유연성 확대와 전문성 강화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외교부의 철밥통 시절이 끝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또 외교부가 자신들의 전문성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정부 내 타 부처의 질시를 이겨낼 만큼 국내 아군(我軍)을 확보하지도 못했다는 의미다. 또 해외 공관에 파견된 타 부처 관리들과의 협력적인 업무환경을 만들어 가는 데 원만하지 못했던 업보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자업자득이다.

그러나 적어도 몇 가지는 실행과정에서 참고해야 한다. 우선 공관장의 개방범위 확대문제다. 전문성 있는 외부인사를 과감히 등용하겠다는 발상은 좋다. 하지만 3년 이내의 단임에 끝날 대사직에 선뜻 나설 전문인력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더욱이 배타성에서 어느 부처에도 뒤지지 않는 외교부에서 공관장을 마치고 조직에서 계속 일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키우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결국 대사직함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이들이거나 아니면 은퇴직장으로 해외업무를 택하는 이들 정도가 자리를 탐하게 될 것이다. 물론 돌아갈 직장이 보장된 이들이라면 얘기는 다르다. 하지만 이들조차 현실 경험 없는 자리를 맡아 3년 정도 일하게 될 때 업무 익히다가 임기를 마치게 될 공산이 크다. 어차피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몇 나라 공관장은 이미 외부인력으로 메워져 왔다.

그래서 외교업무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공관장을 보좌하는 '문정관'제도를 활용하는 게 낫다. 현지 사정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시간낭비 없이 바로 투입돼 공관 활동에 기여할 여지가 있다. 외교부가 밉더라도 외교는 역시 전문가가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외부에서 사람 찾기에 앞서 자체 인력의 전문성을 높이고 실력있는 중견인재들을 수시로 외교부에 충원하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아울러 외교인력의 확충도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다가왔다. 복수차관제 도입 정도로 대처하기엔 우리의 외교전선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이라크전과 파병, 교민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테러나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한국 핵물질 실험 논란 등 예전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업무들이 닥치고 있다. 외교관 숫자가 인구 10만명당 3명, 외교예산이 정부 총예산의 0.64%, 국제기구 가입이나 대외원조 규모 등 정부의 국제정치 무대 참여 수준이 62개국 가운데 41위라는 우리의 외교적 위상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유일한 분단국가로서 가진 것이라곤 인적자원뿐인 우리에게 주변 및 국제사회와 더불어 사는 지혜를 국민이 공유하는 건 생존과 번영을 위한 필수요건이다. 그리고 외교전선에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들을 키워내는 일은 더 이상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혁신 구상에서 또 하나의 문제는 외교안보연구원의 기능 변화다. 외교관들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 교육기능에 역할을 집중시키겠다는 생각은 연구원에 철밥통 차고앉아 바깥의 질투를 자초했던 본부대사들 때문이다. 또 나름대로 경륜있는 대사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지 못한 외교부의 안이함과 경직성을 향한 질책이다. 정책감각이 있는 연구진을 전략개발에 적극 활용하고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관에 '문정관'으로 배치해 외교인력으로 전용하는 것은 외교부의 혁신 방향과도 일치한다. 관리들은 2년여마다 바뀌어도 전문 연구진의 경험은 외교부에 남는다. 조직을 흔드는 것만이 개혁은 아니다. 기존 조직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작업도 혁신이다.

길정우 통일문화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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