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얘기 해외서 왜하나" 청와대, 李총재에 반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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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거듭 압박하고 있는 데 대해 청와대측이 화를 냈다.

李총재가 핀란드 방문 중 기자들에게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는 시작일 뿐이다. 국정쇄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 데 대해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8일 "金대통령이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한 이후 가시적 조치가 없다고 李총재가 얘기했는데, 총재직 사퇴 그 자체가 가장 가시적인 조치"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야당 지도자가 해외에서 왜 자꾸 국내 문제를 얘기하느냐"는 불만도 표시했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 이후 한나라당이 국정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반응을 자제해왔다. 그런 청와대가 李총재를 비판한 것이다.

다른 관계자도 "金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늘 수석회의에서 李총재에 대한 섭섭한 심정들을 토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울산시를 방문한 金대통령이 "야당도 '대통령이 국정에 전념하면 도와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촉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특히 李총재가 영수회담을 사실상 거부한 데 대해 청와대 참모들은 언짢아한다.

총재직 사퇴를 계기로 李총재의 협조를 이끌어내려 했기 때문이다. 유선호(柳宣浩)정무수석은 이날 수석회의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청와대는 金대통령의 총재직 사퇴 이후 심경과 국정에 임하는 자세를 李총재 쪽에 분명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수석은 "왜 李총재가 金대통령의 진심을 외면하는지 모르겠다"며 "金대통령이 총재직을 사퇴한 것은 어떤 복선이 있는 게 아니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한 수석은 "'총재직 사퇴에 모든 것이 포함돼 있다'는 말은 내년 대통령선거에 대한 金대통령의 확고한 중립 의지를 믿어달라는 당부"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李총재의 요구에 계속 끌려다닐 수만은 없다는 게 청와대측의 고민이다.

김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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