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순수시인 현실정치에 '일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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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권력은/(무슨 권력이든)/있을 때/행사하는 걸/삼가야 하는 것/정말 힘 있는 존재는/그게/저절로 된다는 것/그게 스스로 안 되면/그건/힘이 없다는 증거".

중진 시인 정현종(연세대 교수)씨가 최근 출간된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위 시 '권력' 전반부와 같이 권력과 대통령에 대한 고언(苦言)으로 읽힐 수 있는 시 네편을 발표했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정씨는 정치.사회를 비판하는 참여시와는 거리를 두고 40년 가까이 순수시 세계를 일구며 올해 제1회 미당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이다. 그런 정씨가 이번에는 작심한 듯 권력에 비판의 화살을 날리고 있다.

위 시 '권력' 후반부는 이렇게 이어진다."권력은/그 행사를 삼갈 때/힘차고/그 삼가는 게/저절로/그렇게 될 때/그건/아름다운 것/빛나고/아름다운 것". 한편 같은 지면에 실린 시 '경청'에서는 남의 말을 듣지않고 밀어붙이는 독불장군 같은 세태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불행의 대부분은/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비극의 대부분은/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아, 오늘날처럼/경청이 필요할 때는 없는 듯/대통령이든 신(神)이든/어른이든 애이든/아저씨든 아줌마든/무슨 소리이든지 간에/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듯/(후략)".

정씨는 "이 시들은 요즘 정치와 사회를 바라보는 괴로운 심경이 점점 더 심화돼 견딜 수 없이 터져나왔다"며 "우리 공동의 아픔을 시와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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