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핵물질' 안보리 안가게 된 배경] 정부, 막판 총력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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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가 한국의 핵물질 실험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린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한국의 미신고 실험은 과거 이라크.리비아.북한.루마니아 등 정부 차원에서 핵개발을 추진했던 국가들과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다. IAEA 측의 사찰 결과 한국의 경우엔 실험실 규모의 수준이고 사용되거나 추출된 핵물질이 소량이며 문제가 된 일련의 실험이 이후 계속됐다는 징후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란도 안보리에 회부하지 않기로 한마당에 한국 문제를 계속 물고 늘어지기가 어려웠다. IAEA 관계자는 "한국 건이 이란 문제와 함께 처리된 것이 한국으로선 행운"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차원에서 핵개발을 추진했던 이란은 봐주면서 원칙론을 고집해 한국을 안보리에 보낸다면 형평에 맞지 않고 논리적으로도 모순이기 때문이다. 또 이틀간의 빠듯한 이사회 일정상 기술적으로 검토하고 처리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한국 문제에 더 매달릴 여유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정부의 막판 전방위 외교도 한 몫을 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이사국들의 실리가 숨어 있다. 정부는 국가 위신 실추와 6자회담에 미칠 악영향을 감안해 배수진을 치고 안보리행 저지에 나섰다. 변수는 미국이었다. 이사회 개막 전날까지 미국 대표는 최종 입장 정리를 못한 채 본국의 훈령만 기다렸다고 한다. 그동안 미국은 안보리 회부가 불가피하다는 쪽이었다. 실제 존 볼턴 국무부 차관은 틈만 나면 "안전조치 협정에 관한 한 작은 신고 누락사항도 모두 안보리에 보고해 투명하게 해두는 게 핵 비확산 체제를 위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나 협조를 구하고 정부가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자이툰 부대의 주둔 연장을 결정하는 등 미국이 반길 조치를 잇따라 내놓으면서 강경했던 태도가 극적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프랑스.영국.호주.캐나다 등 핵확산 방지에 엄격한 입장을 갖고 있는 국가들을 달래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IAEA를 막후에서 움직이는 이 국가들은 "앞으로 같은 사안이 발생했을 때 기준을 삼기 위해서도 한국 건을 제재 목적이 아닌 정보 보고로서 안보리에 보고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또 "한국만 관대하게 처리하면 이중 잣대의 전례를 만들 수 있고 북한 등 진짜 문제국가를 다룰 때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는 입장을 보였다. 유럽국가들은 또 IAEA의 세 차례에 걸친 사찰 결과를 담은 보고서가 곳곳에서 한국 측 진술의 오류, 의혹제기나 해명촉구, 추가 조사 필요 등 날카로운 지적을 하고 있는 점에 근거해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면서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실리를 챙긴 미국의 태도가 바뀌면서 유럽국가들도 더 이상 안보리 회부를 고집할 수가 없었다. 영국만은 막판까지"한국 건이 의무 불이행인지를 현재로선 판단하기 어렵다"면서 이의를 제기했다. 과민하게 반응했던 일본도 막판에는 수그러들었다. 정부는 이사회 개막을 앞두고 오명 과학기술부 장관을 보내 일본이 추진하고 있는 국제열융합 실험화로(ITER) 유치에 적극 협력하겠다면서 회유에 나서기도 했다.

빈=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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