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세금 경쟁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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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8세기 제정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는 농노(農奴)를 해방시킨 여왕으로 소외계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 여왕도 세금을 깎아달라는 농민들의 끊임없는 진정을 거절할 방도를 찾는 데 골몰했다.

당시보다 훨씬 앞서 러시아를 다스렸던 표트르 대제는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정말 성가시구나. 내 ××이나 떼가라"고 화를 냈다는 고사를 전해 들었다. 그 다음날 여왕은 농민대표들을 불러들여 "짐에게는 그것조차 없다"고 소리쳐 그들을 몰아냈다.

어느 나라 왕정에서나 세금은 국민들을 가렴주구(苛斂誅求)상태에 이르게 하는 역사가 있었으며 20세기 민주주의 체제가 정착되고서야 집권자들이 국가경영을 위해 세율을 조정하고 때로는 인하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나 '강한 나라' 건설을 목표로 그럴 듯한 조세정책을 내놓는 정치 후보들도 선거판도를 유리하게 끌어가기 위해서는 만부득이 감세방안을 들고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경우도 흔해졌다. 1960년대에 미국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골드워터는 이렇게 한탄했다.

"세금을 줄이기 위해 결사적으로 싸우겠다고 공약하지 않는 정치가가 어디에 있는가. 그러면서도 그들은 지출이 요구되는 사업에 찬성 투표하여 조세삭감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지 않는가."

94년 미국 중간선거의 승리로 야당인 공화당이 의회를 완전히 장악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공화당은 향후 5년 동안 2천1백60억달러 규모의 세금을 깎겠다고 선언했다가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다.

80년대 레이건 정권의 감세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현재의 부시 대통령은 상속세 폐지 등을 포함해 10년 동안의 감세계획을 이미 의회에 내놓았다.

최근 여야간에 세금 깎아주기 경쟁이 치열하다. 명분도 있다. 세계경제가 침체상태에 빠져 있는 데다 미국 테러사태까지 겹쳐 불황의 골이 너무 깊어가고 있다. 서둘러 특별소비세율을 인하했으며 소득세도 곧 내린다. 그러나 기업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법인세 2%포인트 인하안에 대해서는 여야가 정면대결하고 있다.

올들어 프랑스와 독일.영국.일본뿐 아니라 아시아 국가들도 경제난에 시달린 나머지 세율인하 경쟁대열에 섰다. 바야흐로 조세경쟁시대다. 세금 깎아주는 걸 반가워하질 않을 납세자들은 없다.

비록 세율 인하논쟁이 각당의 대선전략에서 묻어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가까운 미래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에 대한 신뢰할 만한 청사진이 있었으면 좋겠다. 국민은 그걸 보고 정치를 심판한다.

최철주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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