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냉전과 대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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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2차대전 이후 냉전시대가 시작되면서 미국 사회는 '매카시즘'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는다. 무차별적 공산주의자 사냥에 동의하지 않은 수많은 지식인들은 자리에서 쫓겨나야 했다. 그 때 지식인들은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

『냉전과 대학』(Cold War and The University)은 지식인의 삶에 끼친 냉전의 본질을 본격적으로 규명하고 있다.

진보적 주장으로 널리 알려진 MIT 언어철학과의 노엄 촘스키 교수를 비롯, 보스턴대 명예교수인 하워드 진, 하버드대 생물학과 R C 르원틴, UC버클리대 인류학과 로라 네이더, 컬럼비아대 정치역사학과 I 카츠넬슨 등 원로 교수 9명이 이 작업에 참가했다.

이들은 냉전시대 매카시즘이라는 광기가 어떻게 대학사회를 뒤흔들었으며, 정부와 대학사이의 '관계'가 학문의 방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각자의 경험을 털어놓는다. '이제야 말한다'유의 한풀이로 흐르지 않도록 최대한 객관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는 인상은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다.

우선 촘스키 교수는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지식인 성향 변화에 주목한다. 전후 유럽에 비해 모든 면에서 절대적 우위를 갖게 된 미국. 매카시즘은 이러한 '자신이 최고'라는 오만함에 반공주의가 결합된 맹목적 애국주의라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냉전은 미국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가. 한마디로 그것은 전쟁이 끝나도 국가가 경제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확고한 세계 1등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은 2차대전 때처럼 엄청난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인프라 구축을 계속해야 했다.

르원틴 교수는 국가가 여전히 군사적 비상상태에 놓여 있다는 냉전의식이야말로 전후 미국 경제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해결책이었다고 지적한다.

국가의 개입은 대학으로 이어졌다. 당시 MIT예산의 90%가 펜타곤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하워드 진 교수는 대학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지원은 결국 학문의 자유를 담보했으며 정부를 비판하는 교수들의 목줄을 죄는 것이었다고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정치적 상황에 대한 공개적 비판이 금지된 미국 학자들은 철저하게 자기검열에 나서야 했고, 씌어지지 못한 책과 강의되지 못한 강좌, 그리고 수행되지 못한 연구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측정할 길이 없다."

이 책을 엮은 앙드레 시프린은 미국의 군사기관과 정보기관이 대학에 끼친 영향, 정부예산이 학문연구의 방향에 끼친 영향 등에 대해 앞으로 좀더 구체적으로 규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실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가 그 연구를 지원하는 기업이나 국가로부터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지식인은 자신의 양심을 억압하는 그 어떤 권력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사회든 존경받는 지식인, 즉 진지한 지식인으로 인정받게 된 사람은 권력에 종속될 경향이 매우 농후하다. 권력에 종속되지 않는 사람은 지식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혹은 비판자, 아니 어쩌면 '이데올로기적'반대자로 주변화된다"라는 촘스키 교수의 지적은 지식인의 책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말해준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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