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윈도] 3권분립 흔드는 부시의 '슈퍼 파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1900년 이래 미국의 대통령은 모두 19명이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한 우드로 윌슨, 한국전쟁을 이끈 해리 트루먼, '미국인의 연인' 존 F 케네디, 냉전의 승리자 로널드 레이건 등 쟁쟁한 이름이 많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가장 막강한 파워를 행사한 사람은 1933~45년 3기를 연임한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였다. 의회는 무더기 입법으로 대공황의 사막을 건너가도록 밀어주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신속 비상대권을 그에게 부여했다.

월남전을 이끈 린든 존슨도 여러 전쟁권한을 누렸지만 루스벨트에는 훨씬 못미쳤다.

요즘 미국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파워 면에서 '제2의 루스벨트'로 떠오르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9.11 테러와 대(對)테러전쟁이 그의 힘을 마구 키워주고 있다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imperial presidency)'라는 말까지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20일 테러전쟁 이후 입법.사법.행정 3부의 변화를 지적했다.

부시는 지난주 미.러 정상회담에서 핵무기 대폭 감축을 선언했다. 러시아의 요구와는 달리 협정의 형식이 아니라 행정부의 일방적 결정으로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비준이라는 의회의 구속을 비켜간 것이다.

부시는 일부의 비판을 무릅쓰고 테러용의자들을 군사법정에서 재판하도록 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평상시 같으면 사법부에 돌아가야 하는 권한이다. 테러전쟁을 시작하면서 부시는 정보기관 브리핑을 상.하원의원 5백38명 중 지도자급 8명에게만 국한했다.

의회의 거센 반발로 '관련위원회'로 범위가 늘어났지만 부시의 뱃심을 보여준 사례였다. 또 테러퇴치법으로 부시 행정부는 용의자를 구금.조사하는 데 막강한 사법권을 행사하고 있다.

당연히 비판과 우려가 뒤따르고 있다. 자유주의 성향의 싱크탱크인 케이토연구소의 팀 린치 연구원은 "부시 대통령이 휘두르는 파워는 숨이 막힐 정도로 놀라운 수준"이라며 "단 한 사람이 전쟁을 이라크까지 확대할 것인지, 또 국민의 사생활을 어느 정도로 제한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진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