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누구를 위한 정년연장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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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999년 1월6일-민주당.자민련 의원들에 의해 교원 정년을 65세에서 62세로 단축하는 교육공무원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에서 날치기 통과.

4만여명의 교사가 교단을 떠난 뒤인 2001년 11월 21일-한나라당.자민련 의원들에 의해 정년을 63세로 연장하는 같은 법 개정안 교육위원회 통과.

시행된지 3년도 안된 중요한 교육정책을 간단하게 뒤집은 정치권을 바라보는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서울 E여고의 이모 교사(45)는 "교사들이 정치판의 장난감이 된 듯한 기분"이라며 "교장.교감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교사들이 냉소적이어서 교무실 분위기가 더욱 무거워졌다"고 말했다.

여론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내년의 선거와 표를 의식해 수적 우위를 앞세워 밀어붙인 결정이라는 점 때문에 대다수의 교사들마저도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교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교사들의 사기진작에 얼마나 도움을 줄 지는 누구도 자신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 I초등학교의 강모 교사(32.여)는 "사기 진작은커녕 교사들의 집단 이기주의로 비쳐질까 걱정스럽다"며 "과연 누구를 위한 정년연장이냐"라고 반문했다.

말끝마다 '민의(民意)'를 앞세우는 정치권은 정년단축 추진 당시 80%가 넘는 학부모들이 교단의 신진화를 기대하면서 찬성했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민했어야 했다.

아울러 두 야당이 정년연장의 명분으로 제시한 교원 수급난 해소에도 이번 조치는 거의 효과가 없으며 교단의 고령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학부모들의 눈초리는 심상치 않다. 학부모 단체들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했고 부적격 교원에 대한 고발운동까지 벌이겠다고 예고했다.

지금 국민은 수혜자인 교사들마저 반대하는 정치권의 교원 정년연장 조치가 본회의에서 어떻게 처리될지 주시하고 있다.

정치권이 이문제를 이성적으로 마무리할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마지막 선택이 민의에 기초한 합리적 선택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정현목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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